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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0월 22일, 폴 요하네스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 사망, ‘변증적인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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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폴 틸리히. 하나님은 존재가 아닌 존재 자체이다.” 


오늘은 폴 요하네스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가 사망한 날입니다. 1965년 10월 22일, 폴 틸리히는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날 밤에 자신이 토마스 알타이저의 사신신학(死神神學)에 아버지와 같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튀빙겐, 베를린, 할레,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수학한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1914-1918) 군목으로 활동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는 가운데 실존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군생할 후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강의하던 틸리히는 1933년에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맙니다. 유대인 학생들을 옹호했고, 히틀러의 정책을 비판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와 콜롬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틸리히는 자신을 ‘변증적인 신학자’로 일컬었습니다.


틸리히에 의하면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신앙은 존재론적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항상 비존재의 존재론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에 대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러한 ‘궁극적 관심’에 대한 신학적 대답, 바로 그 자체이다. 하나님이 바로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와 상호 연관된다. 이것이 틸리히의 유명한 ‘상호 연관의 방법’이다. 인간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질 때, 존재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상징을 통해 인간에게 대답하시는데 이를 ‘상호 연관’이란 표현으로 설명한다.[김상근, 『인물로 읽는 교회사: 기독교 역사를 뒤흔든 인물들의 역사 스페셜』 (서울: 평단문화사, 2007), 270.]


틸리히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이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내어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이를 ‘응답하는 신학’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틸리히의 의도를 공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틸리히는 “하나님은 존재가 아닌 존재 자체이다.”만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진술이라고 주장하며 정통적인 하나님 이해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틸리히가 인간의 실존 상황과 그 답변으로서의 기독교적 메시지에 다 같이 충실하면서 이 둘을 종합하고자 했으나, 실상 기독교적 메시지보다는 상황 쪽으로 기울어짐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단다. 즉, “한편으로는 회의와 의심,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신앙의 전통 사이에 있는 울타리를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틸리히는 균형을 잃고 상황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로 성경적 기초가 너무 빈곤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즉, 틸리히는 신학의 자료로서 교회사, 문화사, 종교사에 큰 비중을 두었으나 이들을 비판하고 균형 잡아주는 성경적 기초가 너무 약하여 메시지를 상황에 의존시키고 말았다는 것이야. 이런 비판의 한 예로 틸리히의 동료였던 라인홀드 니버의 비판을 들 수 있는데, 그는 틸리히 신학이 “성서를 토대로 하지 않고 존재론적 사변에 치중하고 있다”고 아쉬워하였어.[박만, 『폴 틸리히: 경계선상의 신학자(현대신학자평전 3)』 (파주: 살림, 2003),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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