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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1월 15일, 허암(虛菴) 김홍전(金弘全, 1914-2003) 출생, "설교자이자 음악가 그리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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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허암(虛菴) 김홍전(金弘全), 독립개신교회”


오늘은 허암(虛菴) 김홍전(金弘全, 1914-2003)이 태어난 날입니다. 1914년 11월 15일, 김홍전은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지사리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김인전 목사와 사촌지간이기도 합니다. 김홍전은 서울 경신학교를 졸업한 후 말스베리(Dwight R. Malsbary) 선교사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웁니다. 전라북도 관현악단을 조직하여 음악적 역량을 펼쳤고,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편찬하는 표준성경주석의 이사야서 부분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페이스 신학교, 드롭시(Dropise) 대학,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교 등에서 수학한 김홍전은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하여 대전 기독학관(현 한남대학)에서 학장 고문 겸 이사회 고문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남장로교가 W.C.C.에 가입하자 사임하였고, 약 2년간 민국일보의 사장 겸 발행인으로 일했으나 민국일보사 해산으로 그 직위마저 내려놓게 됩니다. 그는 1964년에 성약교회 목회를 시작하였고, 도쿄 기독교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캐나다로 이주하여 토론토에서 사역하면서 한국을 왕래하며 독립개신교회를 세웠습니다.


배교의 현실이 어떤 것입니까? WCC를 예로 보더라도 가령 어떤 사람이 정통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정통을 하면서 자기네와 합해서 하자고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은 논하지 말고 같은 것만을 세워 놓고 그리고 함께 합동해서 일을 하자고 합니다.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바 협동해서 일하다고 하는 이상(理想), 그런 목표를 가지고 다 끌고 들어갔습니다. 가령 미국의 개교회 가운데에는 “우리는 성경을 그대고 믿고 진리를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교단이 어떻더라도 우리는 정통입니다.”하는 교회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북장로교회 얘기입니다. 교단이 그러면 어떠냐, 괜찮은 것 아니냐 합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큰 배를 타고 가면 배가 가는 데로 가게 되지 제 혼자 다른 데로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Ⅰ』 (서울: 성약, 2000), 50.]


김홍전은 구약을 전공했으나, 신약, 교리 및 역사 등에 있어서도 해박했고, 찬송가의 작사·작곡에서도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후배들의 요청을 고사(固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강설집을 정독한다면 그 이해의 깊이와 탁월한 적용 속에서 따뜻한 설교자 김홍전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전범(典範)은 아닙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암매한 세계에서……기적을 나타내 보이시기도 하는 것입니다……초대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어떤 목사가 기적을 행하고 병을 많이 낫게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쓰셔서 하나님의 능력은 훨씬 더 신비하고 거룩하며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도 이렇게 작용한다는 것을 실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친 사람들에게서 사귀(邪鬼)도 많이 나가고 앉은뱅이도 걷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그랬습니다. 이기선 목사님 같은 분이 한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린 일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을 잘 압니다. 그는 평안북도에 주로 다니면서 전도하신 분입니다……그 노인 목사님이 ‘성경에 표시한 기적은 다 자기가 경험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기적은 참 많을 것이다’ 하고 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김홍전, 『너희가 믿을 때에 성신을 받았느냐』 (서울: 성약, 2011),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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