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말콤 펜윅, 한국문화는 서양문화보다 인류의 행복에 훨씬 더 많이 기여해 왔다.”
오늘은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 1863-1935)이 별세한 날입니다. 1935년 12월 6일, 45년간 한국선교에 힘써 왔던 펜윅은 원산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을 봉분(封墳)하지 말 것, 세상에 있는 교회들에 물들지 말 것 등을 유언으로 남겼고, 재산은 교단과 제자들을 위해 나누어주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23살에 회심한 펜윅은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1889년 12월에 독립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그는 안식년차 캐나다에 귀국한 기간에 침례교회와 유대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피어슨 박사와 고든 목사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펜윅은 서민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1919년에 출판했습니다. 그는 ‘서기관’을 ‘선비’로, ‘석청’을 ‘산꿀’로, ‘처녀’는 ‘새악시’로 번역했습니다.
그가 초기 한국교회 시기에 시대를 앞서가는 선교사로 사역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나이아가라 사경회와 아드니람 고든이었다……먼저 나이아가라 사경회를 통해서 펜윅은 자신의 신학훈련을 형성하였는데 이 사경회는 20세기 초 근본주의 운동을 일으키는 씨앗이 되었고, 그 다음 펜윅의 선교훈련은 보스턴 선교사 훈련학교의 설립자로서 클라렌돈 교회의 담임목사이며 역사적 전천년주의자이며 온건한 칼빈주의자이며 선교 동원가였던 아도니람 고든을 통해 이루어졌다……펜윅으로 하여금 전천년주의자, 세대주의자, 환란전 휴거주의자가 되도록 한 것은 나이아가라 사경회였다. 그의 종말론 사상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복음화시키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나아가서 모든 박해와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펜윅은 한국 전통종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난 이후 이들과……접촉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비신자들을 접하며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종시킬 수 있었다.[안희열, 『시대를 앞서간 선교사 말콤 펜윅』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6), 273-74, 276.]
펜윅은 13년 만에 첫 한국인 지도자 신명균을 배출하여 공주성경학원 원장으로 파송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펜윅을 붙드시고 인내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자신을 ‘찌그러지고 누추한 양철통’으로 여겼던 그는 오지선교, 자립선교, 신앙선교를 실천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펜윅의 근본주의적인 색채와 시대를 앞선 초교파적 선교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여전히 그는 혁신적인 선교사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펜윅은……한국 문화, 예절, 전통, 풍습 전반을 대단히 존중했다. “아주 냉정하게 생각할 경우 중국과 한국문화는 서양문화보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훨씬 더 많이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내 견해로는 동양이 서양문화를 갖는다는 건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선교사는 언어, 관습, 사람에 관한 실제적인 지식을 터득한 뒤에야 비로소 전도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펜윅은 한국인에 의한 복음 전도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선교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자서전 겸 선교 경험”을 정리한 『대한기독교』(The Church of Christ in Corea)에서 “외국인에 대한 복음전수는 선발된 본국인 신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에게는 당시 서양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찾을 수 있는 제국주의적 색채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4), 4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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