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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오늘은 출옥성도 주남선(朱南善) 목사가 거창경찰서에 연행된 날입니다. 1939년 12월 6일, 51세의 주남선은 신사불참배운동죄로 경찰서에 호출되어 조사를 받고 8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7월에 다시 체포되어 1945년 8월 17일까지 구금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전에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약 1년간 투옥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민족공동체에 속한 일원으로서 당연한 의무로 여겼고, 그것이 신앙운동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은 기독교에 입신하여 집사, 장로가 된 이후였고, 또 경남성경학교에서 수학한 이후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의 신석구 등 다수의 교회지도자들처럼 그의 신앙은 독립운동에의 참여의 정신적 힘이었다.”[이상규, 『한상동과 그의 시대』 (서울: SFC, 2006), 89.] 1938년 9월 장로교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주남선 목사는 이에 저항했습니다. 그는 곧 거창교회 담임목사 사퇴 압력을 받아 해임되었고, 1940년에 다시 구금되어 1945년 8월 17일에야 출옥하였습니다. 주남선에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이자, 하나님께 대한 범죄행위였습니다. 주남선은 1945년 1월에 평양형무소에서 두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신사참배를 할 법한 세례지원자들에게는 석방 이후에 세례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성숙한 출옥성도였습니다. 1945년 12월 3일, 경남노회 노회장으로 당선된 주남선은 이렇게 노회원들에게 인사하였습니다. 그의 겸손은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이 사람은 형무소 안에서 바깥세상을 모르고 주님만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떻게 세월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게 살아왔습니다만, 여러분은 직접 일본 사람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자니 참으로 수고가 많았습니다.”[김영재, 『한국교회사』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09), 288.] 주남선은 교인들을 사랑하는 교역자였습니다. 장맛비가 심하게 내리는 밤에는 등불을 들고 밤새도록 성도들의 집을 방문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6.25 때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주일간 금식하며 기도했고, 남아있는 교인들을 심방하며 교회를 지켰습니다. 정부가 1946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애국표창을 하려 하자, 주남선은 고사(固辭)했습니다. 애국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자 생활이지 공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가 구성될 때 정치지도자들이 강력하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했으나 이도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고려신학교 설립을 논할 때 주남선을 빼놓을 수 없으나 그는 언제나 ‘숨은 주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 부족한 이들을 끌어안는 사랑,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 모두가 배워야할 귀한 덕목입니다. 삶 자체가 한 편의 설교였던 어른들이 그립습니다. 그 어른들이 연모(戀慕)했던 하나님을 나도 섬기고 따를 수 있음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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