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알렌, 나는 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그 날을 보기 위해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오늘은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 우리말 이름 안련[安連])이 별세한 날입니다. 1932년 12월 11일, 알렌은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Toledo)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기 2년 전, 그는 당뇨병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알렌은 웨슬리언 대학교와 마이애미 의과대학에서 수학한 후 미국 북장로교회 의료 선교사로서 1883년 중국에 도착합니다. 서양귀신이라고 배척하고 돌벼락이 쏟아지는 악조건 속에서 사역하던 그는 1884년 9월에 조선으로 임지를 옮깁니다. 갑신정변(우정국 사건) 때 민영익을 효과적으로 치료한 알렌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 설립에 공헌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외국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엄금하고 있었으므로 알렌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공사관의 직원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알렌은 한국에서 보낸 첫 편지에서, “현재 이 나라에서는 선교사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으나, 나는 공사관 소속의 의사이므로 앞으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실제 고종은 미국 공사 푸트(Lucius H. Foote, 福德)로부터 알렌의 임명을 보고받을 때 알렌이 선교사가 아닌가를 물었는데, 푸트가 ‘그는 공사관 소속의 의사’라고 대답하자 이를 수용하였다. 알렌이 단순히 미국공사관 소속의 의사 자격으로 입국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렌 자신과 푸트가 모두 의식하고 있었다. 알렌은 “나는 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그 날을 보기 위해 살아가기를 희망한다.”고 썼던 것이다. 알렌에게 의료선교사로서 입국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에 노력했던 미국공사 푸트도 자신이 선교사들을 위한 종교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이만열, 『한국기독교의료사』 (서울: 아카넷, 2003), 34-35.]
알렌의 선교 기간은 5년 정도였습니다. 그는 1890년부터 15년간 외교관(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 등)으로 근무했습니다. 알렌은 짧은 사역 기간 동안 동료 선교사들과 갈등을 겪곤 했습니다. 우리의 그의 선교 초기 일기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우월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렌은 루즈벨트 대통령 앞에서 미국의 친일정책을 비판했고, 이로 인해 직위에서 해임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격동의 시간을 우리와 함께 했던 알렌을 기억합시다.
알렌에게는 그가 미국 외교관으로 있는 동안 한국과 미국과의 경제관계를 확고하게 확립하려는 열의가 차 있었다. 미국 기업의 이권을 한국에 될수록 많이 심는 일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것은 일본제국의 아세아 패권으로서의 등장과 더 나아가서는 세계 확장의 위협을 일찍이 감지하여, 그 세력이 호시탐탐 노리는 한국침략의 야욕을 미국 자본의 한국진출로 차단하고자 한,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구안식시(具眼識時)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자본의 한국진출이 일단은 몇 착수되었다. 1895년의 운산금광이 그 첫 결실이었다. 그다음 이권의 양도가 1896년의 서울-제물포 간의 철도부설권이다. 고종이 채광권의 미국 양도에 흡족하였던 까닭은 구한말 비극의 아픔이 설명해 준다……알렌의 의도는 선교적인 차원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한국이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힘으로 철도가 부설되어 거기 달리는 기차의 강력한 힘을 보고 “철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넘치고 있었다.[민경배, 『한국 민족교회 형성사론』,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8), 2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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