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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9월 12일,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1788–1866) 출생, “옛 질서로의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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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알렉산더 캠벨, 회복주의(환원주의, Restorationism)”


오늘은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1788–1866)이 태어난 날입니다. 1788년 12월 12일, 캠벨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출생했습니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21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아버지와 함께 환원운동을 벌였습니다. 캠벨은 “옛 질서로의 환원”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오직 성경 안에서만 신학적 기본을 찾고, 그 위에서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캠벨은 침례교단에서 탈퇴한 후 계속해서 초대교회 정신의 회복을 강조했으며, 버팔로 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비성경적인 이유로 분리된 여러 교파들을 통합해서 신약성경의 원리에 충실한 교회를 이루겠다는 캠벨의 목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흥운동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은 바턴 스톤과 알렉산더 캠벨의 ‘회복주의(Restorationism)’ 운동이었다……장로교 출신의 캠벨은 교파의 분열을 한탄하면서 “기독교인의 연합”을 위해 모든 교회가 신약성경의 원칙에 따라 단순히 “크리스천” 혹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캠벨과 스톤의 추종자들은 1830년대에 서로 합쳐져서 ‘그리스도의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를 형성했다. 이 복고주의적 ‘제자 혹은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감리교, 장로교와 같은 교파적 이름 대신 ‘그리스도의 교회(혹은 제자)’라는 보다 보편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매주 성찬식을 행하였으며,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침례를 베풀었다. 19세기 초의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제자’들은 남부와 중서부에서 교세를 크게 확장해나갔으며, 세기 말에는 65만 명을 헤아렸다.[류대영, 『미국종교사』 (파주: 청년사, 2007), 233-35.]


캠벨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환원운동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 구체적 배경은 1800년대에 활발하게 전개된 부흥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통과 편견을 버리고, 성경적인 일치를 추구했지만, 더 많은 분열과 교단의 성립에 기여할 뿐이었습니다. 목욕물을 쏟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선배들의 성공과 실패 위에 서 있는 전통을 폄하하지 맙시다. 복된 교회의 전통 속에는 진지한 성도들의 고민과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생각 없이 전통을 맹신하는 것은 나쁩니다. 그러나 전통 없는 진공상태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뿐입니다.


교파 사이에 벌어지던 경쟁에 실망한 부흥운동 지도자들은……비교파적 그리스도인의 단일 교회를 재창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들 자체가 또 하나의 교파가 되었다. 1870년대에 예배에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와 일부 교회 기능을 중앙화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대립되어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제자들)의 교회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악기 사용과 전국조직을 반대하였다. 그리스도 제자들의 교회는 기악 연주를 허용하고, 선교 사업에 협력하기 위한 중앙선교위원회를 설립하였으며, 다른 교파와 협력과 협의를 한 오랜 역사도 가지고 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교회(Christian Church)와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가 그리스도 제자들의 교회에서 다시 갈라져 나왔다. 이들은 기악을 허용하지만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 제자들의 교회보다 더욱 보수적이다.[John W. Wright ed., The New York Times Guide to Essential Knowledge, 김유열・김유신・김소정 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6. 철학・종교』 (서울: 이지북, 2005),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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