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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12월 13일,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출생, "개신교회 안에는 항상 교회에 대한 개혁적인 요소와 해체적인 요소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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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보편성을 추구한 분리파의 아들”

오늘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출생일입니다. 1854년 12월 13일 새벽 12시 30분, 그는 네덜란드 호오허페인(Hoogeveen)에서 기독개혁교회(분리 측)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캄펀신학교, 자유대학교에서 가르쳤던 바빙크는 보편성을 추구한 교회의 신학자였습니다.

바빙크는 ‘계속적 개혁’의 후기 노선을 답습한 교회의 출신이지만, 양 경향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바빙크는 「네덜란드신앙고백」28조를 언급하며 “교회가 직분이나 그 직분의 봉사에 있어 자신들이 만든 규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상위에 두어 거짓교회임을 드러내게 되면, 성도들을 스스로 분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새롭게 살아야 하는 거룩한 사명과 피할 수 없는 의무를 지닌다”고 하였다. 즉, 개신교회 안에는 항상 교회에 대한 개혁적인 요소와 해체적인 요소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834년 네덜란드 국가교회의 신앙적, 신학적 타락을 개혁하려던 분리개혁교회를 이런 식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변호에만 머무는 수구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개혁자들이 씨름하던 개방성과 보편성을 자기 교인들에게 회복시킴으로써 그들에게 공교회성의 안목을 심어주려 하였다. 이 과정을 통하여 작은 나라, 작은 교회에서 태어난 바빙크는 공교회적인 신학자로 성장하였고, 결국 개혁교회와 개신교회의 역사에서 뛰어난 신학적 공적을 남겼다.[유해무, 『헤르만 바빙크』 (파주: 살림, 2007), 25-26.]


바빙크는 캄펀신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바탕으로 4권짜리 『개혁교의학』4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대작은 한국교회를 신학적·신앙적 풍요로움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보편적 기독교란 신앙 색깔의 다양성을 초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다양성 가운데 현존한다. 단 하나의 교회가 얼마나 순수하든 보편적 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얼마나 순수하든 기독교 진리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집단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로 여기며 진리를 독점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파는 나무에서 잘려진 가지처럼 말라 죽을 것이다.[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박태현 역, 『개혁교의학 1』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36.]

바빙크는 평생 ‘분리파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폐쇄성과 독단주의에 함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애통파와의 합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자신이 알고 믿는 바를 정치, 교육, 학문에 적용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가장 개혁적인 사람은 가장 폭이 넓은 사람입니다. 분리주의와 근본주의의 폐단에 물든 한국교회가 바빙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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