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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12월 15일,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출생, "로마제국의 다섯 번째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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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부여받은 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37년 12월 15일,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다섯 번째 황제였습니다. 네로는 전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 행 11:28)의 친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네로의 어머니 아그립피나(Agrippina)가 그의 후취(後娶) 부인이 되어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한 후 자기 아들을 황제로 만들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네로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평균 키에 몸 곳곳에는 점이 있었으며 악취를 풍겼고, 암갈색의 머리칼에, 매력적이라기보다는 평범한 풍모였다. 눈은 유약해 보이는 파란색이었고, 목은 굵었으며 배가 나왔고, 다리는 매우 가늘었다.” 네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이복동생과 친모, 스승인 세네카를 죽였습니다. 64년 여름 로마에 발생한 대화재는 시가지의 2/3 이상을 태웠습니다.

다른 악마 같은 소행 중 그는 로마 시를 불태워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의 장교들은 그대로 시행했다. 로마 시가 화염에 싸여 있는 동안 그는 마케나스 탑 위에 올라가 하프를 타면서 타오르는 트로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그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이 다 파괴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불타버린 원형극장은 시민들이 운동 경기를 즐기던 장소였다. 길이가 약 0.5마일의 타원형으로 100,000명의 관람객은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끔찍한 화재는 9일간 계속되었다.[Marie Gentert King ed,, Foxe’s Book of Martyrs, 양은순 역, 『기독교 순교사화』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17.]

네로가 대화재를 일으켰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민심은 네로를 등지고 있었습니다. 네로는 새로운 도시계획을 구상 중이었고, 화재 소식을 듣고도 신속히 로마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화재의 책임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타키투스에 의하면, 네로는 기독교인들에게 짐승 가죽을 씌운 다음, 사나운 개로 하여금 그들을 물어뜯게 하였고, 일부는 십자가에 못박거나, 일부는 산 채로 불에 죽였다. 로마의 장로 클레멘스에 의하면, 네로는 여신도들에게 희랍 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처럼 고역을 치르게 한 다음, 역시 희랍 신화에 나오는 디르케처럼 화형 시켰다. 다나오스의 딸들은 지하에서 구멍 뚫린 바가지로 물을 푸는 작업을 쉬지 않고 해야 했다. 테베의 왕 뤼코스의 왕비였던 디르케는 황소의 뿔에 묶여, 죽을 때까지 끌려 다니는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네로가 기독교인들에게 가한 잔혹한 형벌은 도리어 로마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인들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도록 했다고 타키투스는 평했다.[김광채, 『그림으로 본 10대 박해』 (서울: CLC, 2010), 25-26.]

정치를 안정시키지 못한 네로는 68년에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선고받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지만 부여받은 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시고 친히 심판하십니다. 힘의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부여받은 모든 이들이 - 특별히 정치인과 교회 지도자 - 이러한 자각 속에 겸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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