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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핑크의 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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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핑크의 성경연구”

1933년 12월 18일에 아더 핑크(Arthur Pink, 1886-1952)는 로웰 그린(Lowell Green)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 속에서 핑크의 성경연구 방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핑크는 일 년에 세 번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하루에 구약 8장, 신약은 2장씩 읽었습니다. 또한 매일 10분 이상 절별로 집중적인 연구를 하였는데, 중요 어휘를 뜻을 찾아보고, 문맥을 살펴본 후, 관주(Marginal Reference)를 참고했습니다. 그는 쪽지에 말씀을 기록하여, 일과 중 수시로 묵상하면서 영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핑크는 소화를 위해 잘게 씹어 먹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영의 양식을 섭취할 때 묵상이 필요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핑크는 결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줍음 많은 성격 때문에 목회 현장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설교 후 사람들과 인사하기보다는 홀로 기도하기 위해 서재로 향하는 핑크의 모습은 오해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1시간이 넘는 그의 설교는 회중이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핑크가 냉담하고 불친절하다고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7년 만에 그의 목회사역은 막을 내렸습니다. 핑크의 남은 선택은 글을 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쓰라린 아픔 속에 지역교회사역을 중단한 핑크는 1918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은둔자적이고 비사교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회심 이후, 나는 하나님의 시간을 게으른 사교활동을 위해 쓰는 것을 피해 왔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돕지 못하거나 내 자신을 바꾸지 못한다면, 연구에 매진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Iain H. Murray, The Life of Arthur W Pink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2004), 50-51.]

핑크는 독특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회심 후 그의 기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핑크는 기질적 연약함 때문에 강단에 서지 못했지만, 목마름과 성실함으로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고독한 가운데서도 저술에 힘쓴 핑크는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를 1922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설교가 로이드 존스는 1942년부터 10년간 이를 구독하며 도움을 얻었습니다. 부족한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어 주님을 섬겼던 핑크를 통해 배웁시다.

박사님과 같은 방에서 저는 『두 인간성』(D. R. 데이비스)을 읽는 데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저의 관심사를 알아차린 박사님은 목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목사로 부르심 받았다면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바르트와 브루너를 읽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게. 그들에게서 설교에 도움 받을만한 것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일세. 핑크의 책을 읽게.” 당시 핑크의 작품이 널리 읽혀지고 있지 않을 때 곧 오늘날처럼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기 오래전에, 저는 이렇게 『성경연구』을 소개받았습니다. 박사님의 조언에 정말 감사했습니다.[Iain H. Murray, Life of D. Martyn Lloyd-Jones Vol-2, 김귀탁 역, 『로이드 존스 평전 2』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2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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