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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 12월 20일,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별세, “외투에 박힌 가시처럼 나는 그리스도께 달라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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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나의 영주님”

오늘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가 별세한 날입니다. 마차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53세의 카타리나는 1552년 12월 20일에 눈을 감았습니다.

임종 시에 루터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을 받아들여요.”라고 캐티에게 충고하였다. 그때 캐티는 “나의 사랑하는 박사님, 하나님의 뜻이면 여기보다 당신이 우리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해요. 저희들 걱정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돌보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1546년 62세를 일기로 루터는 세상을 떠났으며 캐티는 그로부터 6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외투에 박힌 가시처럼 나는 그리스도께 달라붙겠다.”는 것이었다.[William J. Peterson, Martin Luther had a wife, 이기봉 역, 『복음주의자의 아내들』 (서울: 두란노, 1986), 30-31.]

카타리나는 5살 때 수녀원에 보내어졌습니다. 기다란 얼굴에 툭 튀어나온 이마, 볼품없이 긴 코와 고집 세 보이는 완고한 턱을 가진 그녀는 미녀가 아니었으나 종교개혁자의 아내로서 손색없는 지성과 인간성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카타리나는 수녀원에서 루터의 소책자를 접했습니다.

루터는 결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바르트부르크에 있을 때 수도사들이 결혼하기 시작하자 루터는 “이런! 내게 아내감을 줄 사람은 없겠지”라고 외쳤다……이웃마을에 사는 몇몇 수녀들이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 루터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루터는 직접 그들의 수녀원 탈출을 도왔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었는데, 수녀들의 납치는 사형에 해당되었고, 게오르크 공작(Duke George)이 이러한 처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루터는 은밀히 토르가우의 존경받는 시민 레온하르트 코프(Leonhard Köppe)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코프는 때때로 수녀원에 청어를 배달하던 60세 된 상인이었다. 1523년 부활절 전날 밤 코프는 빈 청어 통을 싣듯이 12명의 수녀들을 포장마차에 태웠다. 3명은 집으로 갔고, 9명은 비텐베르크로 왔다.[Roland H. Bainton, Here I Stand (Nashville, Tenn.: Abingdon Press. 1950), 223.]

탈출한 전 수녀 카타리나는 26세에 루터와 결혼했습니다. 루터는 이 결혼을 망설였는데, 자신이 언제 화형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42세의 루터는 자신의 결혼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교황을 약 오르게 하며, 천사를 웃게 하고, 마귀를 울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의 증거에 인을 쳐 줄 것임을 믿었습니다. 카타리나는 루터의 허술한 재정 관리를 통제해주었고, 독서하는 루터의 곁을 지켰으며, 여섯 자녀를 낳아 키웠습니다. 루터에게 있어 그녀는 간호사, 요리사, 의사 그 이상이었습니다. 루터는 결혼하여 사랑과 평화를 갖는 것이 복음의 지식 다음가는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카타리나를 “나의 갈비뼈”, “나의 영주님”, “나의 속박의 사슬”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로새서 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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