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서양인”
오늘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éspedes, 1551-1611)가 내한한 날입니다. 1593년 12월 27일, 세스페데스는 서양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했습니다. 세스페데스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그 도시의 시장이었습니다. 예수회 신부가 된 세스페데스는 1577년 일본에 도착하여 선교하던 중 우리나라에 오게 됩니다. 그는 나가사키를 떠나 대마도를 거쳐 일본군 진영인 곰개성(웅천성)에 도착한 후 한국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2,000명의 일본병사들의 고해성사를 도왔습니다. 세스페데스는 조선에 건너와 일 년간 머문 후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남긴 4통의 서간문에는 임진왜란과 당시 조선상황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담겨 있습니다.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을 정복한다는 구실로 한국 땅을 침범했다. 그는 한국 침략을 위해 15만 명의 병사들을 동원했는데, 그중에는 천주교 신자인 병사들과 장군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조선 땅에 도착한 뒤로는 전쟁 때문에 신부의 미사와 강론을 거의 듣지 못했다. 이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면서 서구의 선교사들과 긴밀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던 일본군 총대장 아우구스티누스(소서행장의 천주교 세례명)는 모든 천주교도 병사들에게 미사와 강론을 담당할 신부를 한국으로 모셔왔다.[이강혁, 『한 권으로 보는 스페인 역사 100장면』 (서울: 가람기획, 2010), 206.]
세스페데스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서양인이자 로마가톨릭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조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이지는 않았습니다. 세스페데스 이후 프란체스코 데 라구나(Francesco de Laguna)신부와 하멜 등의 사람들이 조선을 다녀갔지만 본격적인 복음전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극심한 위기 가운데 있을 때 복음의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칼과 창과 함께 복음이 들어오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합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고개를 숙입시다. 그분은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주께서는 정확한 시간에 그 기쁘신 뜻대로 역사하시니 의지하고 순종할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아 제국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기독교 국가의 식민통치를 받은 일이 없다. 도리어 반기독교적인 일본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그 통치의 와중에서 기독교는 고난의 길을 가는 민족의 동행자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과 교회는 깊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독특한 민족주의를 발전시켰다. 아아제국의 많은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의 식민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의 민족주의는 대체적으로 반(反)기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반민족적 행위로 인식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반대적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기독교 신앙과 융합되었다……그래서 교회는 민족과 유리된 배타적 집단이 아니라 민족의 아픔과 고난의 동반자였다.[이상규,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 (서울: 생명의양식, 2007),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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