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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년 1월 5일, 펠릭스 만츠(Felix Mantz, 1498-1527) 수장, "성경 아카데미의 히브리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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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근원적 종교개혁자 만츠”

오늘은 펠릭스 만츠(Felix Mantz, 1498-1527)가 죽은 날입니다. 1527년 1월 5일 오후 3시, 만츠는 림마트(Limmat) 강에 수장되었습니다. 그의 두 손은 무릎 뒤에서 막대기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로써 만츠는 첫 번째 재세례파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펠릭스 만츠의 아버지는 취리히 그로스 뮌스터 교회의 사제였습니다. 츠빙글리는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만츠를 당시 계획 중에 있던 성경 아카데미의 히브리어 교수로 발탁했습니다. 그는 유아세례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츠와 같은 믿음을 수호한 이들을 ‘열성파’, ‘재세례(침례)파’, ‘급진파’ 등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를 사용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radical’이라는 말을 우리는 보통 ‘급진적’이라고 번역했다. 그러고 나서 ‘급진적’인 사상은 대개가 폭력을 용인한다고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 속에 등장한 ‘래디컬’들은 오히려 비폭력적인 평화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때 ‘급진 종교개혁’이라고 번역했던 것을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래디컬’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을 보면 ‘뿌리’라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16세기 래디컬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것은 종교개혁 운동의 뿌리까지 철저하게 하자는 것이었지, 폭력을 사용해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의 공역자인 필자와 침례신대의 남병두 교수는 ‘래디컬’을 ‘근원적’이라고 번역하기로 했다. 잘 쓰지 않던 용어라서 생소할지 모르지만, ‘래디컬’의 본뜻을 그나마 가장 잘 표현해주는 용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George H. Williams, Angel M. Mergal ed., Spiritual and Anabaptist Writers, 남병두·홍지훈 역, 『성령주의와 아나뱁티스트 종교개혁자들』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21-22.]

그들은 취리히의 종교개혁에 미진한 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유아세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으나, 시의회는 츠빙글리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눈바람 치는 겨울 밤, 그들은 펠릭스 만츠의 집에 일부가 모여 서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에, 취리히 시의회는 성인 재세례신자들을 수장시켜야 한다는 법령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는 대립하는 종교개혁자들을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아들들이었으며, 신념과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제와 다른 점을 비판하기 전에 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품어줄 수 있기 원합니다.

교회 분열을 조장하는 재세례파에 대해 개혁파를 따르는 시의회는 재세례를 베푼다 하여 그들을 물에 빠뜨려 죽였고, 추방했으며, 화형을 시켰습니다. 물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시행한 주체가 시의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시 2,00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재세례파가 죽었는데 희생자 중 85퍼센트가 로마 가톨릭이 있는 지역에서 죽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교회와 전통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재세례파를 더욱 더 핍박했습니다. 반면 개혁파는 이제 겨우 태동하기 시작한 종교개혁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이유로 재세례파를 핍박했습니다.[라은성, 『이것이 교회사다』 (서울: PTL, 2012),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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