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2018년 1월 7일 가정 예배 순서지

반응형

1월 7일 가정 경건회.hwp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10)

이제 2차 귀환이 시작됩니다.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성전을 통하여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동물을 태워드리는 연기는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뜻합니다. 각종 제사는 죄 사함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offer) 행위입니다. 그러나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한다면 기독교는 행위종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여 기도합니다. 찬양을 부릅니다. 준비한 헌금도 드립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정규적으로, 진지하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즐거이 배우고 가르치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가르치는 직분이 필요합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에 가르치는 직분을 허락하셨습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밀하게 연구하여 회중 앞에 강론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회중의 특성을 고려하고, 그들의 필요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성경 본문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이 직무를 위해 매진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도행전 6:3-4)

아무리 긴급한 일이 있어도 이 우선순위가 깨어지면 교회 전체가 깨어집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심방하고 복음 전도하되, 서재에서 기도하며 연구하는 시간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목회자를 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 에스라가 바벨론을 떠납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목적이 본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말 번역에는 7절 앞에 있어야 할 왜냐하면”(For)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말씀 사역이 필수적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준비된 사람 에스라를 보내십니다. 그는 아론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학자입니다. 에스라의 결심은 분명합니다. 연구와 준행과 가르침. 이러한 굳은 마음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9절을 자세히 읽어봅시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 7:9)

하나님 말씀에 헌신한 한 사람 까닭에 2차 귀환자들 모두가 주님의 도우심을 누렸습니다. 험한 날씨와 도적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10절 앞에 위치한 왜냐하면의 힘입니다. 성경에 헌신한 한 사람은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합니다. 성경 자체와 교회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문제는 내가 너무 똑똑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로움보다 나으니, 무릎을 꿇고 생각을 단순하게 합시다. 먼지 쌓인 나의 성경을 폅시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디모데전서 4:1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