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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년 1월 13일,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 별세, “친구들의 모임”(Society of Friends)의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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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조지 폭스, 사람이나 책이나 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

오늘은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가 별세한 날입니다. 1691년 1월 13일, 폭스는 런던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퀘이커(Quakers)라고 불리는 “친구들의 모임”(Society of Friends)의 설립자였습니다. ‘퀘이커’는 ‘떠는 사람’이란 뜻으로 그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1647년경에 종교적인 체험을 한 폭스는 진리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한 것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열어 보이신 이후로 나는 목회자들을 덜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그보다는 다른 생각들 가진 사람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그러나 목회자들에게 실망하였듯이 분리주의자에 속한 설교자들에게도 실망을 느꼈다……그 때 “한 분이 계시니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네 처지를 말할 수 있는 분이다”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너무도 기뻐서 깡충깡충 뛰었다……주님을 좇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커갔으며, 다른 사람이나 책이나 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 한 분만을 온전히 바로 알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자라갔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서 읽기는 하였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계시를 통해 열쇠를 가지신 분이 그 문을 여셨으며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로 나를 인도하셨다.[Rufus M. Jones ed., The Journal of George Fox, 문효미 역, 『조지 폭스의 일기』(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2), 71-72.]

폭스와 퀘이커 교도는 모든 맹세와 서약을 거부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4절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전쟁 참여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친우회는 개신교 내에서 제일 먼저 노예제도를 반대한 그룹 중 하나였습니다. 윌리엄 펜은 폭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경외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지도자의 역량은 중요하지만 오는 세대를 위해 물려주어야 할 교훈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핍박을 통해 성장한 폭스와 그의 친구들이 성경 대신 내면의 빛을 추구한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그는 1643년에 두 명의 청교도가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술값을 낸다는 조건으로 술내기 시합을 하는 것을 보고서 도전을 받아 영적 진리 탐구를 시작했다……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하나의 생활 방식, 즉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신비 체험이 되었다. 그는 설교를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친구들”(Friends)라고 불렀다……1652년에 스와스모 홀(Swarthmore Hall)의 마가렛 펠(Margaret Fell, 1614-1702)이 퀘이커 교도가 되었으며, 그녀의 집은 퀘이커파의 비공식적 중심지가 되었다. 폭스는 1669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선교적 열심과 당국의 박해로 인해 그 신봉자들은 영국 외부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으려 했기 때문에 퀘이커파는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폭스가 13개 식민주들을 방문했을 때(1672-73), 그는 그곳에서 많은 퀘이커 집단들을 발견했다. 1666년에 질서를 세우고 회원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월례 집회 제도가 세워졌다.[Earle E. Cairns,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 엄성옥 역, 『세계교회사 2: 종교개혁 및 현대편』(서울: 은성, 1995),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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