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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37) 1월 20일 스펄전 저녁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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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저녁의 묵상)

○ 제목: 내 눈을 돌이켜

○ 요절: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37)

  많은 종류의 허탄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웃음소리, 춤, 음악, 그리고 음란한 삶은 다 허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뚜렷이 그들에 알맞는 이름과 제목을 띠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걱정거리들과 부의 기만성은 다 똑같이 허탄한 것들로서 훨씬 더 믿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극장에서와 같이 회계 사무소에서도 진정으로 허탄(허망)을 좇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가 그의 인생을 부를 쌓는데 보낸다면, 그는 그의 날들(일생)을 헛된 쇼우(show)로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우리의 하나님을 인생의 위대한 목적으로 삼지 않는한 우리는 외관상에서만 아주 사소하게(조금만) 다를 뿐입니다(즉 우리는 불신자들과 외관상 매우 조금 다를 뿐이고 실상은 거의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37) 
  시편 기자는 자기는 우둔하고, 힘들고, 거의 죽을 지경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마 그대도 똑같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나태해서 주님 자신과 동떨어져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소생시킬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지옥이 나를 깨우지 않겠습니까? 내가 멸망하고 있는 죄인들을 생각하고서도 깨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깨우지 않겠습니까? 내가 의인을 기다리는 상급을 생각하고서도 냉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나를 자극하지 않습니까? 내가 죽음과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어찌 내가 나의 주님을 섬기는 일에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주님의 소중한 상처를 생각할 수 있고, 내가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 앉을 수 있고, 열성과 열정으로 불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순한 성찰(숙고)만으로는 우리를 열정에로 깨울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하셔야 합니다. 그대의 그 외침은 "나를 소성케 하소서" 입니다. 시편 기자는 열렬한 탄원으로 그의 온 영혼을 숨으로 내쉬고 있습니다. 그의 몸과 그의 영혼을 기도안에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즉 그 몸은 "내 눈을 돌이키라" 고 말합니다. 그 영혼은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매일 드려야 할 올바른(알맞는)기도입니다. 

Evening

"Turn away mine eyes from beholding vanity; and quicken thou me in thy way."
Psalm 119:37

There are divers kinds of vanity. The cap and bells of the fool, the mirth of the world, the dance, the lyre, and the cup of the dissolute, all these men know to be vanities; they wear upon their forefront their proper name and title. Far more treacherous are those equally vain things, the cares of this world and the deceitfulness of riches. A man may follow vanity as truly in the counting-house as in the theatre. If he be spending his life in amassing wealth, he passes his days in a vain show. Unless we follow Christ, and make our God the great object of life, we only differ in appearance from the most frivolous. It is clear that there is much need of the first prayer of our text. "Quicken thou me in thy way." The Psalmist confesses that he is dull, heavy, lumpy, all but dead. Perhaps, dear reader, you feel the same. We are so sluggish that the best motives cannot quicken us, apart from the Lord himself. What! will not hell quicken me? Shall I think of sinners perishing, and yet not be awakened? Will not heaven quicken me? Can I think of the reward that awaiteth the righteous, and yet be cold? Will not death quicken me? Can I think of dying, and standing before my God, and yet be slothful in my Master's service? Will not Christ's love constrain me? Can I think of his dear wounds, can I sit at the foot of his cross, and not be stirred with fervency and zeal? It seems so! No mere consideration can quicken us to zeal, but God himself must do it, hence the cry, "Quicken thou me." The Psalmist breathes out his whole soul in vehement pleadings: his body and his soul unite in prayer. "Turn away mine eyes," says the body: "Quicken thou me," cries the soul. This is a fit prayer for every day. O Lord, hear it in my case this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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