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변발(辮髮)한 영국선교사”
오늘은 중국 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가 결혼한 날입니다. 1858년 1월 20일, 허드슨 테일러는 연회색 비단 드레스를 입은 마리아 다이어(Maria Jane Dyer)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마리아는 1870년 7월에 태어난 노엘이 2주 만에 세상을 떠나자 며칠 후 그 뒤를 따랐습니다. 결혼 전 마리아는 부모를 모두 잃은 상태였습니다. 테일러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결혼 당시 그는 그간 자신을 후원했던 영국의 중국선교회를 사임한 상태였습니다. 본국 선교회가 빚을 내 가면서 선교비를 지급해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의학공부를 다 마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변발(辮髮)을 하고 중국인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 18:22)는 복된 말씀을, 나는 결혼을 통해 실감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는 내게 있어서 진정한 선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아내를 크게 축복하셔서, 그 다사다난했던 12년간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중국을 위해 헌신하게 하셨다. 내 아내의 집안은 중국 선교 사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새뮤얼 다이어(Samuel Dyer)로서 아시아에 파송된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의 초기 선교사였다. 그는 이미 1827년에……피낭(Penang)과 싱가포르에 있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16년간 헌신적으로 사역했다. 또한 처음으로 중국 활자를 철자로 인쇄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Hudson Taylor, Faith Mission, 김지찬 역, 『허드슨 테일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7), 181-82.]
건강상의 이유로 1860년에 영국으로 돌아온 테일러는 신경·소화·간의 기능이 심하게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건강을 돌보며 의학공부를 마쳤고,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창설하여 선교사들을 모집했습니다. 1866년 테일러는 마리아와 네 아이들, 16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테일러를 후원했던 찰스 스펄전은 자신이 선교사명을 심각하며 고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하게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은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합시다.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재교육을 위해 힘을 모읍시다.
첫째, 초교파적 선교단체를 지향하며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교파 출신이든지 제한을 두지 않는다. 둘째, 중국내지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는 단체의 정기적인 후원 대신에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의뢰한다. 셋째, 중국내지선교회는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재정 후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넷째, 중국 현지의 선교 지도자는 영국에서의 지시를 기다릴 필요 없이 독자적으로 선교 사역을 결정하고 실행할 재량권을 갖는다. 다섯째, 중국 복음화를 위한 계획에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참여한다. 여섯째, 중국내지선교회 소속 선교사는 가능한 중국 현지인처럼 생활한다. 중국 의상을 입고 젓가락을 사용하며 중국식의 집에서 거주한다.[Janet and Geoff Benge, Christian Hoeros: Taylor, 안정임 역, 『중국의 심장부 깊숙이: 허드슨 테일러』 (서울: 예수전도단, 2010),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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