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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 1월 24일(화요일) 존 웨슬리의 일기, “오! 누가 나를 개종시켜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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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오! 누가 나를 개종시켜 줄 것인가?”

나는 인디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식민지(America)에 갔다. 그러나 오! 누가 나를 개종시켜 줄 것인가? 누가, 무엇이 나를 불신의 죄악된 마음에서 건져줄 수 있을까?……나는 위험이 가까이 오지 않는 선에서 내 자신을 믿고 말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내 얼굴을 바라보자 내 영혼은 괴로움에 떨었다. 더 이상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2:21)고 말할 수 없...다……오, 누가 나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날아가야 하나? 생각하거나 망각함으로 이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할까?[Albert C. Outler ed., John Wesley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44.]

1738년 1월 24일(화요일)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기록한 일기의 일부분입니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갔던 웨슬리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 일기를 써 내려간 웨슬리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의 솔직한 절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누가 나를 변화시켜 줄 것인가”(oh, who shall convert me?) 여기서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역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심하지도 않은 채 안수를 받고 선교사 파송을 받은 웨슬리 같은 일꾼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누구도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생명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도울 수 있겠습니까? 웨슬리는 거룩해지려는 노력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웨슬리는 후에 윌리엄 로우(William Law)로 인해 자신이 뒤늦게 회심에 이르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한 때 자신의 선생님이었던 로우의 신학 사상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로우의 문제점을 다섯 가지로 비난했다. 첫째, 로우는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신앙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둘째, 로우는 이 신앙을 갖기 위해 간구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지 않았다. 셋째, 로우의 권면 속에는 내가 이미 이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었다. 넷째, 로우의 권면에 따르는 것은 참된 신앙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다섯째, 로우는 이 신앙을 갖는 데 적절치 못한 몇 개의 서적을 추천하였다.[강민수·정준기, 『조지 휘트필드와 에큐메니칼 운동』 (서울: CLC, 2013), 71.]

윌리엄 로에 대한 웨슬리의 다섯 번째 비판을 통해 좋은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유한한 우리는 이 땅에서 짧은 시간을 살다 갈 것이기에, 영혼의 건강을 위해 양서(良書)를 선별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죄인이 회심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복된 책이 있는가하면, 비참한 죄인을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는 책도 있습니다. 웨슬리의 회심에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이 사용되었습니다. 양서는 성도로 하여금 성경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어떤 책을 읽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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