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한국의 간디, 조만식 장로
오늘은 ‘한국의 간디’로 일컬어지는 조만식 장로가 태어난 날입니다. 그는 1882년 2월 1일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에서 조경섭씨의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1888년 6살에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수학하였고, 8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글을 익혔습니다. 그는 일제치하에서 ‘물산장려운동’을 이끈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이승훈 다음으로 오산학교의 교장이 되어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그는 산정현교회의 장로로서 오산학교 시절 제자였던 주기철이 목사가 되자 직접 마산에 내려가 그를 청빙하여 잘 섬긴 것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민족의 거목, 조만식 장로와 같은 이가 다시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한 사람이 바로 서야 합니다.
조만식은 학생들에게 근검, 절약, 근면 정신을 강조했다. 이것은 장로교회를 시작한 존 칼빈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는 또 이를 몸소 실천하여 말총모자, 무명두루마기, 미투리, 편리화를 입고 신었고, 저고리와 두루마기에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달아 사용하였다. 고름은 쓸데없이 천을 낭비하는 것이므로 고름을 떼어 내고 거기에 단추를 달아 사용한 것이다. 조만식의 이런 절약과 근검의 정신은 주기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주기철은 생을 마치는 날까지 이를 실천하며 살았다. 특히 조만식은 지리 과목을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을 잘 가꾸어 보존하여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 은연중에 학생들에게 국토 사랑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면서 애국사상을 고취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삶의 터전을 일제에 빼앗긴 것은 하나님께 우리 민족에게 맡겨 주신 소명을 잘 감당치 못한 결과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조만식이 오산에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결정적으로 감동을 준 것은 민족에 대한 애끓는 사랑의 정신과 지조였다. 하여 오산학교 졸업생 중에 일제하에 관리가 된 사람이 없고, 경찰이 되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도 없다. 이런 바탕에서 주기철의 높은 민족애의 정신이 자라났던 것이다.[김인수, 『예수의 양, 주기철』 (서울: 홍성사, 2007),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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