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영광의 나라에서 곧 따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오늘은 미국인 최초의 해외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Jr., 1788–1850)이 결혼한 날입니다. 1812년 2월 5일 수요일, 아도니람은 앤 하셀타인(Ann Hasseltine)과 혼인하였습니다. 낸시(Nancy)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앤은 처음에는 아도니람의 구혼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애정을 바치는 대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로 하고 기쁘게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아도니람은 해외선교사 임명을 받았고, 결혼한 지 2주일도 안 된 부부는 인도행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앤은 23세, 아도니람은 24세였습니다. 아도니람은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앤의 아버지 존 하셀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내년 봄 일찍 선생님이 따님과 헤어지고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을 승낙하실 수 있는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선교 생활의 고난과 고통을 향해 떠나는 것을, 그리고 바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인도의 남부 기후가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모든 결핍과 슬픔을, 모욕과 박해와 심지어 비참한 죽음까지도 감수하고 승낙하시는지 말입니다.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본향인 하늘나라를 떠나 그녀와 선생님을 위해 죽으신 분을 위해, 죽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시온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승낙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 모든 것을 찬양의 환호성(이는 낸시로 인해 영원한 고뇌와 절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이교도들로부터 그녀의 구주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으로 빛나는 정의의 왕관을 쓴 채 영광의 나라에서 곧 따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위해서 승낙하시겠습니까?[Courtney Anderson, To the Golden Shore: The Life of Adoniram Judson, 이기섭 역, 『아도니람 저드슨의 생애』 (서울: 좋은씨앗, 2009), 135.]
아도니람 부부는 버마어를 배우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했습니다. 버마에 도착한 지 6년 만에 첫 번째 침례를 베풀 수 있었고, 이듬해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 로저(Roger)를 잃었습니다. 버마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한 아도니람은 1824년에 간첩혐의를 받고 투옥됩니다. 아도니람은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 힘겨운 포로생활을 2년간 견뎌야 했습니다. 임신한 앤은 남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아도니람이 석방된 지 1년이 채 못 되어 앤은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37세의 앤이 떠난 후, 어린 딸 마리아(Maria)도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아도니람은 실의에 빠졌지만, 버마에서의 선교사역을 24년 동안 더 지속해나갔습니다. 신혼의 달콤함을 배와 선교지에서 보낸 아도니람 부부를 보며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기를 다짐해봅니다.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과 그의 부인 낸시(Nancy Judson)는 1812년 인도에 도착했다. 저드슨 부부와 다른 6명의 선교사들은 미국 최초의 해외선교사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들 미국 선교사들 역시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동인도회사의 방해 공작으로 인도를 떠나도록 명령받았다. 몇 달 간 이에 대하여 항의와 타협을 하는 동안 저드슨 부부는 다른 선교사들을 떠나 버마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일생동안 배타적이고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버마인들에게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실하였다.[Ruth A. Tucke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0), 15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