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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누가복음 8장 “견인(堅忍)과 견인(牽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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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누가복음 8장 “견인(堅忍)과 견인(牽引)”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누가복음 8:15)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씨가 뿌려집니다. 씨가 뿌려진 장소인 길 가, 바위 위, 가시떨기, 좋은 땅은 말씀을 듣는 이의 마음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에 문지기를 세우지 않는 사람은 악령에게 말씀을 빼앗기고 맙니다. 성전을 지을 때, 그리고 훼파된 성전을 재건할 때 문지기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구약성경을 펼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받은 말씀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영혼의 사업입니다. 피상적인 감정의 동요는 청자의 마음이 옥토인 것을 증명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장 열렬히 설교자에게 반응하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교회에 큰 누를 끼치는 현상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의 환희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지 않는 충직함입니다. 돈 걱정에 눌린 자나 유흥에 빠진 사람은 영적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은 순종을 통해서만 열매를 생산합니다. 롯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나 열매가 풍성한 삶은 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세상사랑은 말씀의 꽃이 피는 것을 막아 버렸습니다. 소돔성에서 롯은 스스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재물 사랑에 기운이 막혀 결실치 못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는 그것을 굳게 붙듭니다(hold it fast). 그가 말씀을 붙들고 말씀이 그를 붙듭니다. 자동적으로 무슨 주술처럼 성경을 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기억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합니다. 길을 걸으면서 그는 들은 설교를 묵상합니다. 정신없는 출근길과 고단한 퇴근길, 그는 암송한 성경구절을 되뇝니다. 시편찬송과 말씀찬양(Scripture song)은 그의 영혼의 노래이자 환란 날의 무기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복된 특징 중 하나는 인내(perseverance)입니다. 그는 자동적인 열매 맺음이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애쓰고 수고합니다. 그리고 참아냅니다. 인내 없이는 열매 맺음도 없습니다.

모든 열매있는 진실한 종들은 인내의 사람이었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바울의 전기(傳記)를 기록하면서 그 첫 말에, “바울은 인내의 사람이라”하였고, 그 결말도 “바울은 인내의 사람이라” 하였다.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인내는 모든 덕의 항구(港口)라”고 하였다. 과연 인내는 모든 덕의 어미라고도 할 수 있다. 인내하여야 모든 선한 행실을 산출할 수 있다.[박윤선, 『성경주석: 공관복음』 (서울: 영음사, 1983), 254.]

은혜의 교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바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입니다. 견인(堅忍)은 견인(牽引)이 아닙니다. 전자는 참고 견딤을 의미하고, 후자는 끌어당김을 의미합니다. 견인(堅忍)은 성도가 끝까지 참고 견디는 힘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때 사용되고, 견인(牽引)은 고장 난 차를 이동시킬 때 사용됩니다. 인내로 결실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내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견딤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듣고 배운 말씀을 파수하고, 지켜 행할 수 있는 힘의 궁극적 원천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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