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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누가복음 10장 “정보의 부족이 아닌 사랑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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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누가복음 10장 “정보의 부족이 아닌 사랑의 부족”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누가복음 10:25)

동기가 좋지 못한 율법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그저 한수 배울 ‘선생’일 뿐입니다. 그의 질문에 ‘영생’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질문의 진짜 이유는 예수님의 실력을 한번 평가해보고 싶은 어그러진 호기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정답을 바로 제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되물으십니다. “당신은 율법에 정통한 자이니 잘 알 것 아니오?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읽고 해석합니까?” 예수님은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자가 스스로 하게 함으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이것이 문답교육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에 빠진 그 백성에게 질문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율법교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지식을 뽐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는 대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율법교사에게는 하나님과 이웃을 충심으로 사랑하려는 몸부림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신앙의 정수인 열렬하고 역동적인 사랑(affectionate love)이 없었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영생을 원했다면, 그는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가슴을 찢으며 예수님 앞에 엎드렸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부르짖어 간구했을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감정의 시작이요, 으뜸과 원천이다. “사랑이 있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반하거나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을 미워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처한 환경에 따라 발휘되는 사랑과 미움과 다양한 역사를 통해, 갈망과 소망과 두려움과 기쁨과 슬픔과 감사와 분노 같은 다른 모든 감정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이고 역동적이고 풍성한 사랑을 통해서만 죄를 향한 혐오와 증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가 일어나고, 그분의 자비로운 임재를 기뻐하고, 그분이 멀게 느껴질 때 슬퍼할 수 있게 된다.”[C. Samuel Storms, Signs of the Spirit, 장호준 역, 『우리 세대를 위한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서울: 복 있는 사람, 2011), 60.]

율법교사의 스타일이 구겨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엎드려 회개하지 않습니다.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다. 체면을 잃은 그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다시 한 번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통해 명확하게 말씀하신 후 다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는 정답을 이야기했고, 이번에도 주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혹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마음의 창조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변화, 회심을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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