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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누가복음 13장 “변화시키고 팽창시키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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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누가복음 13장 “변화시키고 팽창시키는 천국”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누가복음 13:18)

예수님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고침 받은 여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회당장은 화를 냅니다. 그는 안식일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반응을 외식(hypocrisy)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면서, 오랜 세월 악령과 병으로 고생한 여인을 고치는 것에 반발하는 것은 위선(僞善)이라는 것이 주님의 해석입니다. 예수님은 곧이어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누룩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온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주님이 여인의 치유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 20,000개의 무게는 겨우 30g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땅에 심겨진 한 알의 겨자씨는 수주일 후에 3-6m 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러합니다. 천국은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줄 수 있을 만큼 자라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간 누룩은 가루를 변화시키고 팽창시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국은 죽은 것을 살려낼 뿐만 아니라 배가시키고 번식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무엘상 14:6)

회당장을 비롯한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리고 꼬부라진 여인의 회복을 보고도 감동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조롱했겠지요. 여자 하나 운 좋게 고친 것이 무슨 대수냐고요. 하지만 그들은 작은 겨자씨 한 알, 눈에 띄지 않는 누룩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철저히 무지했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심령의 사람들 앞에 큰 기적을 보여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은 변화되는 듯 보여도 그것은 곧 꺼질 불꽃에 불과합니다. 마음의 변화에서 나온 반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칠천 명은 한 줌에 불과한 듯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러한 형편 속에서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것에 상관없이 오늘도 작은 일에 충성합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스가랴 4:10)

왈도파는 박해의 시대 때 오히려 영적으로, 교리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재생산의 능력이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별명은 “계곡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골짜기의 거민들은 위대한 종교개혁을 예비하는 길을 예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수와 사이즈에 연연해하지 맙시다. 여호와의 편에 선 적은 무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주여, 나의 시대에 큰 나무와 큰 빵 덩어리를 보지 못한다 하여도 이 비밀을 믿고 소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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