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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2월 24일, 글래디스 아일워드(Gladys May Aylward) 출생, "여섯 번째 행복의 여관 (The Inn Of The Sixth Happin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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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147cm의 독신 여성선교사”

오늘은 독신선교사 글래디스 아일워드(Gladys May Aylward)가 태어난 날입니다. 1902년 2월 24일, 글래디스는 런던 북부의 에드먼턴(Edmonton)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에 학교를 중퇴한 그녀는 점원, 유모, 가정부로 일하며 지내던 중 영적인 갈증 속에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글래디스는 청년모임(Young Life)에서 중국선교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내지선교회의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정규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길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중국선교를 준비했습니다. 글래디스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중국에 가기 위해 유럽, 모스크바를 거쳐 시베리아를 기차로 횡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겪으며 만주에서 일본을 거친 후에야 마침내 중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국으로 가는 여비를 공급해 주신 방법은, 글래디스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이었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고 나서도 저녁에는 파티를 돕기도 했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모두 다 저축했고, 닳고 닳은 옷을 계속해서 다시 기워 입으면서까지 돈을 긁어모았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채워 주셨다. 하루는 안주인이……가든파티에……글래디스를 대신 데리고 갔다. 글래디스는 무척 흥분되었지만 파티에 입고 갈 만한 옷이 없었다. 안주인이 옷을 빌려 주었고……그냥 가지라고 말했다. 그 옷은 글래디스가 가진 어떤 옷보다 좋은 것이었다……조금씩 조금씩 돈을 모은 지 1년도 채 안 되어 중국으로 갈 운임료가 다 채워졌다. 글래디스는 족히 꼬박 3년은 모아야 중국에 갈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서른 살에는 중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하나님께서 2년이라는 보너스 시간을 주신 것이었다.[Noël Piper, Faithful Women and Their Extraordinary God, 이지현 역, 『불멸의 신앙: 한계를 뛰어넘은 믿음의 여인들』 (경기: 살림, 2008), 133.]

147cm의 키에 검은 머리칼, 날카로운 억양을 가진 글래디스는 여인숙을 운영하며 1년 만에 중국어를 익혔습니다. 그녀에 관한 책과 영화가 나올 만큼 글래디스는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중국인 목회자 밑에서 4년이나 전도부인(권서인, Bible Woman)으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녀는 겸손한 선교사였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낮아짐의 영성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여, 높아지려는 헛된 야망을 꺾으소서. 좁은 길 가게 하소서.

나인펜스(Ninepence)는 버려진 계집아이였는데 글래디스는 이름만큼 돈을 주고 그 애를 샀다……그녀는 더 많은 아이들을 “입양”했는데 다른 수십 명의 전쟁고아들 역시 그녀에게 삶의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모든 것보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글래디스는 거의 1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1940년 봄 산을 넘고 황하를 건너 태국 국경을 넘어서 안전지대로 피난하였다. 그 여행은 끔찍한 것이었다. 적군은 가까이 있는데 시끌벅적한 100여명의 꼬마들을 데리고 눈치 채지 못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끊임없이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목적지에 도달하자 글래디스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기진하여 쓰러져 버렸다.[Ruth A. Tucke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0),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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