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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3월 4일, 아더 힐더샴(아서 힐더삼, Arthur Hildersham, 1563–1632)이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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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엘리자베스 1세의 사촌 청교도”

오늘은 청교도의 왕자(Prince among Puritans)로 불리는 아더 힐더샴(아서 힐더삼, Arthur Hildersham, 1563–1632)이 별세한 날입니다. 1632년 3월 4일, 힐더샴은 괴혈병으로 인한 발열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아들에게 주님의 양떼를 잘 돌보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힐더샴의 부탁대로 장례식 설교는 생략되었습니다. 로마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문법학교 선생님을 통해 개신교를 받아들인 힐더샴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하며 청교도적인 원리를 흡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찬을 받을 때 무릎 꿇는 것을 거부했고, 공적예배를 인도할 때 써야하는 모자와 중백의 착용도 거절했습니다. 이로 인해 힐더샴은 수차례 기소되거나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든 기회를 동원하여 설교에 힘썼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봅시다.

하나님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라는 확신을 갖지 않고는 아무도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없게 만드십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극악한 죄를 지었음에도 아들이 찾아가야 하는 대상이 자기 아버지임을 생각했을 때, 아들은 담대함을 얻었습니다……비록 우리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시리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Randall J. Peterson, Day by Day with the English Puritans, 임범진 역, 『청교도와 함께하는 말씀묵상 365일』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306.]

힐더샴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사촌지간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힐더샴을 천주교로 복귀시키려고 로마에 보내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고, 이로 인해 유산 상속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왕과 가까운 집안에서 부유하게 지내는 것은 말씀에 매인 바 된 삶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에 중독되어 하늘의 것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천국시민으로 살며 고난을 훈장으로 여기게 하소서.

힐더샴은……지금도 여전히 시의적절한 질문들과 도전들에 직면했다. “진정한 교회란 무엇인가?”, “진정한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회로부터 언제 분리하는 것이 옳은가?”, “다른 의견을 견지하는 성도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양심과 국가가 갈등을 일으킬 때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 비록 힐더샴의 결론에 모두 동의할 수 없다 하여도, 성경적 원리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방식은 교훈적이다. 잉글랜드 국교회로부터 받은 잦은 정직(停職) 처벌에 대한 힐더샴의 반응은(그는 설교를 금지 당했고, 종종 투옥되기도 했다) 박해를 견뎌내는 것에 대한 유용한 교훈을 주고, 성도의 더 큰 헌신을 격려한다. 힐더샴에 따르면, 설교는 가장 높은 부르심이었다. 하지만 강단에 설 수 없을 때, 그는 목회자의 마음으로……다른 수단을 강구하며 사람들을 계속 섬겼다. 제한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경건함 속에서 살아갔던 힐더샴의 신실함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했던” 사람임을 기억하게 한다.[Lesley A. Rowe, The Life and Times of Arther Hildersham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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