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페르페투아가 순교한 날입니다. 202년(혹은 203년) 3월 7일, 그녀는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로마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는 기독교 개종자와 전파자 모두를 처참히 처벌했기에 성도들은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르페투아는 황제보다 크신 분을 끝까지 섬겼습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이런 상황에서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에서 한 가지 특이한 순교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페르페투아(Perpetua)와 펠리키타스(Felicitas) 등 5명의 순교였다. 이들 5명의 순교자들은 카테쿠멘들, 곧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학습자들이었다. 이들이 체포된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황제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귀부인이었던 페르페투아가 체포되자, 그 아버지는 신앙을 포기하고 생명을 구하도록 종용하였다. 당시 페르페투아는 겨우 21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페르페투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물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을 새로이 바꿀 수 없듯이, 나도 기독교 신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름을 바꿀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다……페르페투아는 체포된 후 8일 만에 아이를 출산했다……페르페투아가 그의 노예인 펠리키타스의 손을 잡고 원형경기장에 나타났다. 경기장을 꽉 매운 군중들을 놀라기 시작했다. 귀부인이자 자유인이 침착함과 예모를 흩트리지 않는 것 때문에 놀란 것도 아니었다. 군중들이 놀란 것은 자유인(自由人)인 페르페투아가 노예인 펠리키타스의 손을 잡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손을 잡았다는 것은 ‘동료’라는 의미였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관습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곧 이어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는 달려드는 들소에 의해 받혀 몸은 찢겨가기 시작했다. 찢겨진 몸으로 페르페투아는 자신의 머리를 묶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머리가 풀어진 것은 슬픔과 애도의 상징인데, 이 날은 그녀의 가장 축복된 날이었기 때문이다.[이상규, 『교양으로 읽는 역사』 (서울: SFC, 2009), 40-43.]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초기 기독교 여성에 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직 세례를 받기 전인 젊은 자매의 삶과 죽음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한번밖에 없는 이 땅에서의 삶을 구주를 위해 아름답게 드리기 원합니다. 매일 십자가 지고 제자의 삶을 삽시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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