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수영을 배우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사람”
오늘은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의 동역자였던 길버트 테넌트(Gilbert Tennent, 1703–1764)가 “회심하지 못한 목회자의 위험(The Danger of Unconverted Ministry)”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한 날입니다. 1740년 3월 8일, 부흥운동의 지도자 길버트 테넌트는 펜실베이니아 노팀엄(Nottingham)에서의 설교를 통해 회심 없이 대각성운동을 비난하는 목회자들을 비판했습니다. 테넌트가 잡은 성경 본문은 마가복음 6장 34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들의 설교는 부족하거나 불분명했으며 막연했다. 그들은 디모데에게 준 사도적 명령에 따라서, 사악한 것들과 명확히 구별하지도 않고……맙소사! 그들은 사려 없이 교인들에게 총체적인 혼란을 안겨 준다. 그들은 선악을 구별하는 것을 교인들에게 맡겨 둔다……이는 실로 엄청나게 잘못된 그들의 전반적 습관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은 무지와 분노로 인해서 성경을 잘못 적용하는 좀 더 나쁜 짓을 저지른다. 그들은 종종 사람들에게 생명을 약속해 줌으로써 사악한 자들의 손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들은 사람들이 회심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밭을 갈기도 전에 씨를 뿌리며, 기초를 놓기도 전에 벽을 쌓기에 바쁘다. 이런 어리석은 건축자들은 연약하고 자아 중심적이며 비겁한 설교를 통해 단지 인간의 육적인 안도감만을 강화시킬 따름이다. 그들은 잠에 빠진 영혼들에게 일침을 가할 용기나 정직함이 없다.[Iain H. Murray,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윤상문‧전광규 역, 『조나단 에드워즈: 삶과 신앙』 (서울: 이레서원, 2005), 209.]
길버트 테넌트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목자장되신 예수님께로부터 양떼를 위임받은 목사가 거듭남과 회심을 설교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심각만 문제가 아닐까요? 강단에 불이 붙도록 기도합시다. 성령께서 말씀 맡은 자들을 사로잡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들이 자신을 등한시여기는 동안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정직하게 관심을 가질 것을 가정하는 것이 합당한가? 우리 주님은 자기 자신이 거듭남에 대해서 이방인이면서도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니고데모를 꾸짖으셨다. 이러한 어리석은 건축자가 일을 행하지만 그들의 나약하며 이기적이고 비겁한 대화는 인간의 육욕적인 보장만을 강화시킨다. 그들은 잠자고 있는 영혼에 두려움의 못을 찌를 수 있는 용기나 정직함이 부재한다. 매우 위험한 길에서 장님을 안내자로 세우는 것이 합당한가? 죽은 자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 적합한가? 미친 자가 귀신들을 축사하는 것이 적합한가? 하나님의 적인 반역자들이 평화로 사자로 보내어져서 반역자들을 하나님과 우정의 관계로 가져올 수 있는가? 어둠과 죄악의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포로가 다른 사람들을 자유로이 풀어줄 수 있는 적합한 자인가? 평생의 삶 동안 바다를 경험하지 못한 무지한 촌놈이 바다의 암초나 모래톱에 의해서 토기들이 깨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항해자로 적합한가? 회심하지 않은 목회자는 자신이 수영을 배우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사람과 같지 않은가? 그래서 바보처럼 현장에서 익사하는 것이 아닌가?[John F. Hansen, The Vision that changed a nation: The Legacy of William Tennent, 장대규 역, 『나라를 변화시킨 비전: 윌리엄 테넌트의 영적인 유산』 (서울: 순전한나드, 2008), 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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