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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로마서 1장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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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로마서 1장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로마서 1:21)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인은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고의적으로 말이지요. 알면서도 죄를 범하는 사람의 마음은 부패의 시궁창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반듯해 보이나 실은 모순덩어리인 것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죄인,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연계시는 눈에 보이는 외적 피조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계시는 우리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는 내적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롬 1:19).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감지한다. 심지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어떤 우주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는 우주적인 힘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확신했다. 물론 사람은 이를 부인할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흥미로운 사실은, ‘어리석은’이라는 말이 ‘사악한’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사악하다. 그들은 사악하여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들은 도덕적인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악하게도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락시킨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한다. 만일 그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의미한다.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이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그 무엇을 애써 도외시하고 있는 셈이다.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반박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John MacArthur, How to get the most from God’s Word, 김태곤 역, 『성경, 이렇게 믿어라』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0[1997]), 25-26.] 

하나님은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혐오감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도르트 신조는 아담의 자손들이 받은 타락의 영향에 대해 알려줍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해력을 그의 창조주와 영적인 일들을 아는 참된 구원의 지식으로, 그의 마음과 뜻은 올바름으로, 그의 모든 감정은 순수함으로 단장해 주셨다. 참으로 전인(全人)이 거룩했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의 유혹을 받고,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 모든 뛰어난 은사들을 몰수당하였다. 그리고 도리어 자신의 이해력에는 눈멂과 끔찍한 암흑과 허영과 어그러진 판단을, 자신의 마음과 의지에는 반항과 완고함을, 자신의 감정에는 불순함을 스스로 가져왔다."

황홀경을 부추기는 예배 환경 속에서는 모두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속에서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진노가 제대로 선포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자각해야 의사를 찾습니다. 죄인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달아야 예수님을 찾습니다. 죄인이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보게 하소서. 교회의 강단이 이 일을 잘 감당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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