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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로마서 5장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로마서 5:17) 바울은 아담과 예수님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첫 번째 한 사람은 실패했으나, 두 번째 한 사람은 성공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정죄되었으나, 누구라도 둘째 사람 예수님 안에 있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도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린도전서 15:21)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린도전서 15:45)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47) 어떤 사람들은 아담의 범죄의 결과에 대해 항거할 것입니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선악과는 내가 따먹은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나님은 왜 생사람을 잡는 것인가?”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문은 이러한 반박이 합당치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9문: 하나님께서 사람이 행할 수 없는 것을 그의 율법에서 요구하신다면 이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닙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시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의 꾐에 빠져 고의(故意)로 불순종하였고, 그 결과 자신은 물론 그의 모든 후손들까지 하나님의 그러한 선물들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엎드린 자는 누구든지 그분 안에서 영생을 누립니다. 주여,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온전히 순종하신 그 사랑을 더 깊이 알기 원합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한 범죄”(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을 “한 의로운 행위”(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와 비교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구체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임이 임하게 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담의 한 가지 불순종의 행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나됨을 통해 죄에 대한 형벌로서 우리에게 죽음이 임하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한 가지 순종의 행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위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칭의와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Kevin DeYoung, The Good News We Almost Forgot, 신지철 역, 『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사랑하는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6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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