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로마서 9장 “선하신 뜻대로 선택하신 하나님”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로마서 9:11)
바울은 야곱과 에서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선택 교리를 다룹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사실 야곱이 에서보다 도덕적으로 낫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야곱의 윤리적 우월함 때문에 그를 선택하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받아 마땅한 벌을 주께서 내리신다면, 모든 사람이 정죄 아래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긍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몇몇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나 선행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자기 백성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들이 믿을 것과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인내할 것을 내다보셨기에 택하신 것이 아니라 선하신 주님의 뜻대로 창세전에 우리 이름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반면에 죄인은 늘 은혜를 받는 존재입니다. 믿음과 회개로 갓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가면서 이 복된 교리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선택과 예정의 교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게 하며, 우리의 찬양을 깊게 합니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심으로 땅과 동물에게 물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폭풍과 가뭄을 다스리는 분이다. 하나님의 지배 밖에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섭리 활동은 하나님의 무오한 예지와 결코 철회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예지란 하나님이 시간의 회랑을 내다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는 정도의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지는 하나님의 예정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모든 것을 아시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결정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롬 9:11). 하나님의 예지는 전체를 아우르는 완전한 것이고 무오한 것이다. 인간 실존에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결코 화들짝 놀라게 만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록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유한한 우리가 이해하기란 도무지 불가능하지만, 이 세상에 일어나는 악도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한 말이 생각날 것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흔히 ‘성 금요일’이라고 부르고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바로 그날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해 명백히 악한 행동을 사용하셨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사실을 지적했다. “그(예수)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베드로는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이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명백한 악행을 사용하셔서 궁극적인 선인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능히 이루셨다.[Sean Michael Lucas, On Being Presbyterian, 김찬영 역, 『장로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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