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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스펄전 아침묵상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누가복음 23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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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9

"And there followed him a great company of people, and of women, which also bewailed and lamented him" (Luke 23: 27).

Among the riotous mob which hounded the Redeemer to His doom, there were some gracious souls whose bitter anguish was released in wailing and lamentations--fit music to accompany that march of woe.  When my soul can, in imagination, see the Savior bearing His cross to Calvary, it joins the godly women and weeps with them; for, indeed, there is true cause for grief.  My sins were the scourges which lacerated those blessed shoulders and crowned those thorn-bleeding brow.  My sins cried, "Crucify Him!  Crucify Him!" and laid the cross on His gracoius shoulders.  His being led forth to die is sorrow enough for one eternity, but my having been His murderer is more grief than one poor fountain of tears can express.  Why those women loved and wept is not hard to guess.  They could not have had greater reasons for love and grief than my heart has.  Nain's widow saw her son restored--but I myself have been raised to newness of life.  Peter's wife's mother was cured of the fever--but I was healed of the greater plague of sin.  Seven devils were cast out of magdalene--but a whole legion were cast out of me.  Mary and Martha were favored with visits--but He dwells with me.  His mother bore His body--but He is formed in me the hope of glory.  Let me not be behind the holy women in gratitude or sorrow.

4월 9일

제목 : 가슴을 치며

요절 :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23:27)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His doom, 주님의 죽음의 장소)로 올라 가실 때 주님(구속 주)을 따라 쫓아가는 소란스러운 군중 중에는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은혜로운 여자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영혼들(여인들)은 그들의 쓰라린 아픔을 그 슬픈 행열에 어울리는 음악같은 통곡과 비탄으로 풀었습니다.

내 영혼이 지금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로 가시는 구세주를 상상한다면 내 영혼도 그 경건한 여인들과 함께 슬피 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진실한 슬픔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들이 복되신 주님의 어깨를 찢은 매질이었고 그 이마에 피를 흘리게 한 가시면류관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역자주1), 그의 자비로운 어깨 위에 십자가를 올려 놓았습니다. 주님이 죽기 위하여 끌려가신 것은 한 영겁으로 족한 슬픔이지만, 내가 바로 그 분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은 (영원히 울어도) 그 흘린 슬픈 눈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슬픔(비통)입니다.(즉 우리가 흘린 눈물이 그 비통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여인들이 왜 주님을 사랑했고 또 슬피 울었는가는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슬픔의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이유를 갖을 수는 없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그의 아들이 살아난 것을 보았습니다.(역자주2)  그와 같이 나 자신도 새 생명으로 살아 났습니다.(중생했습니다.)(역자주3)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에서 치료되었습니다.(역자주4) 그와 같이 나도 그 보다 더 큰 죄의 역병(疫病)에서 치료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서는 일곱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역자주5)  그러나 나에게서는 군대 마귀들(a whole legion, 한 군단)이 쫓겨나갔습니다.(역자주6)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님의 심방(尋訪, 찾아 주심)의 영광(은혜)를 받았습니다.(역자주7)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는 함께 살아주시고 계십니다.(역자주8)

주님의 어머니(마리아)는 주님의 몸을 낳으셨습니다.(역자주9)  그러나 주님은 지금 내 안에서 영광의 소망을 이루고 계십니다. 나도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던 그 거룩한 여인들의 슬픔과 감사에 뒤지지 않기를 원합니다.(즉 나도 그 여인들 못지 않게 주님의 사랑을 감사하고, 그 희생을 가슴을 치며 슬퍼할 줄 알기를 소원합니다.)

주1 눅23:21

주2 눅7:11-15

주3 요3:3; 딛3:5; 고후5:17

주4 마8:14-15; 막1:30-31

주5 눅8:2

주6 막5:8-9

주7 눅10:38-42; 요11:1-11, 12:1-2

주8 요14:17,20; 계3:20

주9 마1:20-2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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