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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년 4월 8일, 조셉 얼라인(Joseph Alleine, 1634-1668)의 유아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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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조셉 얼라인(Joseph Alleine), 훈련된 경건”

오늘은 조셉 얼라인(Joseph Alleine, 1634-1668)이 유아세례를 받은 날입니다. 1634년 초에 태어나 4월 8일에 세례를 받은 얼라인은 옥스퍼드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는 먹는 것과 잠자는 것도 뒤로하고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대학 교목으로서 죄수들과 가난한 자들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던 얼라인은 부목사로서도 탁월하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의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사역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얼라인은 열정적인 전도자인 동시에, 능숙한 요리문답 교사였습니다. 그는 1662년 통일령(統一令, The Act of Conformity)으로 인해 강단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매일 한두 번씩 설교하며 이전보다 왕성하게 사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른 데서 행복을 찾는다. 한때는 성경이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다른 무엇보다 큰 기쁨을 준다. 그리스도에 관한 묵상, 그분과의 동행, 그리스도인의 형통한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 이제 당신은 보고 듣고 만지며 맛볼 수 있는 것들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당신의 가장 큰 관심은 영혼의 구원이다. 이제부터 당신은 고난보다 범죄를 더 두려워할 것이다. 전에는 재산이나 명성을 잃을까 염려했으며 고통과 가난과 불명예의 고난을 당할까 두려워했으나,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비교할 때 이제는 이 모든 관심사가 희미해진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Joseph Alleine, Wake up and live, 김태곤 역, 『천국에 이르는 길』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2), 32-33.]

얼라인은 오전 4시부터 8시까지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근로자들의 소리가 들리면 몹시 수치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을 드리고자 했던 17세기 청교도의 경건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의 훈련된 경건은 교도소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얼라인은 그곳에서도 설교하고, 글을 썼습니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는 일에 여전히 나는 미숙합니다. 게으름은 마귀만큼 무서운 대적입니다. 새벽을 깨워 고요한 시간을 사수합시다.

기독교를 믿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곧 회개는 아닙니다. 기독교는 명칭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그것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만일 유대인임을 혹은 이방인임을 포기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참된 회개라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회개의 전부로 생각합니다. 사데와 라오디게아 교회들보다 나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두 교회 교인들은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색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명색만 가진 까닭에 그리스도로부터 책망과……경고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주라고 부르면서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로 인정하실까요? 뭐라고요! 여전히 죄 안에서 살면서 회개했다고요? 그것은 명백한 모순입니다. 만일 신앙고백이라는 등(燈)이 회개의 표시였다면 어리석은 처녀들이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시인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들,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도 행악자들로 판단 받아 배척되는 것을 봅니다.[Joseph Alleine, An Alarm to the Unconverted, 이길상 역, 『회개의 참된 의미』 (서울: 목회자료사, 20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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