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양발(梁发), 최초의 중국인 목사”
오늘은 양발(량파, 梁发)이 별세한 날입니다. 1855년 4월 12일, 최초의 중국인 목사 양발은 66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로버트 모리슨(중국에 파송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의 인쇄공이었습니다. 윌리엄 밀른에게 1816년에 세례를 받은 양발은 두 번째 중국인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양발은 자신의 아내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신앙을 고백한 그녀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양발의 아내 여 씨는 중국 최초의 여성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양발은 자신의 아들 진덕을 모리슨 선교사로부터 세례 받게 하였으니, 이는 중국 최초의 유아 세례식이었습니다. 양발은 최초의 중국인 전도자이자 목사로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1830년 양발은 인쇄공이던 굴앙에게 세례를 주고 그를 전도의 동역자로 일하게 하였다. 1831년 양발은 그의 부친 양충(梁沖)과 두 아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였는데, 당시 기독교인은 1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1832년 양발은 런던선교회에 편지를 써서 18명가량이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엄격한 금교정책으로 말미암아 입교자는 매우 드물었다. 양발의 전도 방식은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대부에게 전단과 서간을 배포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향시(鄕試)와 회시(會試)의 기회를 이용하여 시험장 밖에서 응시한 원생(員生)에게 서적을 나누어주었다. 1년 내에 나누어 준 소책자와 『성경일과』(聖經日課)가 7만 책에 달한 적도 있었다.[조훈, 『윌리엄 밀른: 말라카 선교를 통한 중국 선교기지의 개척자』 (서울: 그리심, 2008), 230.]
개종한 후 귀향한 양발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기 위해 『구세록촬요약해(救世錄撮要略解)』라는 책을 저술하여 200부를 배포했습니다. 이는 중국 사람이 쓴 최초의 전도서적입니다. 양발은 이로 인해 체포 및 투옥되어 곤장 30대를 맞고 벌금 70여 원을 냈습니다. 그는 부친의 집을 지어드리기 위해 모은 돈을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출옥 후 양발의 고향 집은 불에 타 버렸으나 그는 주인 되신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배척하는 환경에서 선구자적으로 신앙을 파수하고 전했던 양발의 삶은 풍요 속에서도 빈곤하게 신앙생활 하는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주님을 위해 이처럼 희생할 수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양발은 전도할 때 청도자(廳道者)의 선을 지향하는 심리를 단단히 포착하여 사정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였기 때문에 왕왕 즉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양발 만년의 전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만년의 양발은 나이가 많고 몸이 약하여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복음을 선양할 수 없었다. 따라서 양발은 항상 미국 선교사 피터 파커가 광주에 설립한 박제의원에 가서 환자에게 전도하였다. ‘그는 극히 감동적인 말로써 구세주의 생애 및 그 남기신 가르침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벽에 걸려 있는 「병자획유(病者獲愈)」의 그림을 가리키며 그의 청중에게 저 병자들이 나을 수 있었던 까닭은 구주께서 주신 복과 의사들이 예수의 계명과 그 남기신 법을 준수하며 치료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1847년 1년간 양발은 병원에서 남자 2,487인, 부인과 아이 550인에게 성경 312책과 종교 팸플릿 1,568권을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병원 전도는 양발 자신이 말하였듯이 아주 시의적절한 전도방식이었던 것이다.[조훈, 『양발: 최초의 중국인 목사』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13), 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