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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기독교 강요』2.8.28-30 {4계명 전체적인 이해, 안식일 계명의 중요성, 일곱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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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10). 28. 일반적인 해석 이 계명의 목적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기호나 일에 대해서 끝내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명상하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방법으로 그 명상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 계명은 다른 계명들에 없는 특별한 고려를 하므로, 해석하는 순서도 약간의 차이가 필요하다. 초대 교부들은 이 계명을 예시(豫示)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가 강림하셔서 다른 상징들과 함께 폐기된 일이, 즉, 어느 하루를 외면적으로 지키는 일이 이 계명에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812)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만, 그들은 문제의 절반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깊이 해석하며, 이 계명을 준수하는 세 가지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숙고해야 한다. 첫째로, 제 칠일의 안식은 하늘 입법자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 안식을 알리시는 방법이었다. 신자들은 자기의 일을 제쳐놓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일하시게 하라는 것이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일정한 날에 서로 모여 율법을 배우며 의식을 행하며 적어도 그 날은 특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명상하는 데 바쳐서, 이렇게 회상함으로써 경건의 훈련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밖에 남의 권위 하에 있는 사람들과 종들에게 휴식하는 날을 주셔서, 그들의 노고를 쉬는 때가 있게 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29. 약속으로서의 안식일 계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서 이 영적 안식의 예시(豫示)가813)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주께서 이 계명에 대해서와 같이 엄격한 복종을 명령하신 계명이 거의 없다(민 15:32-36, 참조, 출 31:13이하, 35:2). 모든 경건이 전복되었다는 것을 예언자들을 통해서 알리고자 하실 때에는, 안식일을 더럽히며 범하며 지키지 않으며 거룩하게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셨다. 안식일에 대한 공경이 없어지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듯이 말씀하셨고(겔 20:12-13, 22:8, 23:38, 렘 17:21,22,27, 사 56:2), 안식일 준수에 대해서는 최고의 칭찬을 주셨다. 따라서 신자들도 다른 계명들 가운데서도 안식일에 대한 계시를 가장 존중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레위 사람들은 공회 앞에서 말했다. "거룩한 안식일을 저희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로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저희에게 명하시고"(느 9:14). 율법의 모든 교훈 가운데서 안식일을 극히 존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교훈은 이 신비의 존엄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며, 모세와 에스겔이 이 존엄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는,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고 하며(출 31:13-14, 참조, 35:2),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라"고 하셨다(출 31:16-17). 에스겔은 이 뜻을 더욱 자세히 표현하지만, 그 요점은 안식일이 한 표징이라는 것과, 이 표징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인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겔 20:12).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의지를 억제하는 것이라면, 외면적인 표징과 내면적인 실상 사이에 아주 긴밀한 일치가 나타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위해서 우리는 전적으로 쉬어야 하며, 우리의 의지를 바쳐야 하며, 우리의 마음을 맡겨야 하며, 우리의 모든 육적 욕망을 버려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생각한 우리 자신의 일은 일체 쉬고, 사도가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일하시며(히 13:21), 우리가 그분 안에서 안식을 얻도록(히 4:9) 해야 한다. 30. 제 칠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칠일 중 하루를 지키는 것은 이 영원한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관습이었다. 주께서는 친히 모범을 보이심으로써 그들이 더욱 경건하게 그 날을 지키게 권장 하셨다. 그가 조물주를 본받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열심을 자극시키는 데 적지 않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완전수로 되어 있는 일곱이라는 숫자에서 어떤 비밀한 뜻을 캐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수를 택한 것은 영구성을 표시하시려는 것이며, 이유가 있다. 모세의 말이 이 점을 지지한다. 그는 차례차례 계속되는 낮과 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이 그 창조주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날로 끝맺는다(창 2:3). 이 수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주께서는 이와 같이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는 안식이 완성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리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안에 있는 복된 안식을 가지기 시작하며, 매일 새로운 전진을 성취한다. 그러나 아직도 육과의 싸움이 계속하고 있으므로, "매월삭과 매안식일"에 대한 이사야의 말이(사 66:23) 실현될 때까지는,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되는 날까지는(고전 15:28) 안식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통해서 마지막 날에 자기의 안식이 완성될 것을 백성에게 대략 알리시며, 그들이 평생 안식에 대해서 끊임없이 명상함으로써 이 완성을 동경하게 만들려고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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