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저녁의 묵상)
제목: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요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 11:13)
우리 주님이 오시기 전에 죽은, 모든 이들 복된 성도들의 비문(碑文)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의 나이가 얼마였던지, 또는 폭력수단에 의하여 죽었는지, 이런 것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이 모두 일치하는 한 가지 요점은 가장 기록할 가치가 있는 요점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히 11:13)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위로였고, 그들의 길잡이였고, 그들의 동기였고, 그들의 후원이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그들의 생애를 마치면서 그들은 같은 영적 은혜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믿으면서 죽지 않았고, 그들의 공로를 의지하면서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한 첫 서약(헌신)을 절대로 동요시키지 않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유지했습니다.
믿음은 믿음에 의하여 사는 것이 중요한 것같이 믿음에 의하여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즉 사는 것도 믿음으로 살고, 죽는 것도 믿음으로 죽어야 합니다.)
믿음에 따라 죽는 것은 과거에 대하여 특별한 관계(관련)를 갖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만들어졌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죄를 하나님의 긍휼(은혜)로 말미암아 지워졌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믿음에 따라 죽는 것은 또한 현재와 관계됩니다. 이들 성도들은 하나님에 의한 그들의 용납(받아들여짐)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랑과 광선(빛살)들을 즐겼고 그의 신실성(信實性)을 믿었습니다.
믿음에 따라 죽는 것은 미래를 들여다 봅니다(내다 봅니다). 그들은 구세주(메시야)가 반드시(확실히) 오시리라는 것을 믿으면서 잠들었습니다(죽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 지상에 나타나실 때, 그들은 주님을 뵙기 위하여 그들의 무덤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의 고통은 더 좋은 상태(형편)를 위한 산고(産苦, 출산의 고통)일 뿐입니다.
그대가 이 비문(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을 읽을 때 기운(용기)을 내십시오. 이 세상의 삶을 통한 그대의 여행은 믿음의 여행입니다. 그리고 환경들은 좀처럼 기쁨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들과 가장 좋은 것들은 같은 길을 동행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주1)
지금 영광 중에 있는 영혼들에게 (주2) 속한 것과 같은 소중한 믿음을 그대에게 주신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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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히 12:22
주2 이 글에서 영광 중에 있는 영혼(the souls now in glory)은 우리에 앞서
소천된 성도들의 영혼을 의미합니다.
Evening
"These all died in faith."
Hebrews 11:13
Behold the epitaph of all those blessed saints who fell asleep before the coming of our Lord! It matters nothing how else they died, whether of old age, or by violent means; this one point, in which they all agree, is the most worthy of record, "they all died in faith." In faith they lived--it was their comfort, their guide, their motive and their support; and in the same spiritual grace they died, ending their life-song in the sweet strain in which they had so long continued. They did not die resting in the flesh or upon their own attainments; they made no advance from their first way of acceptance with God, but held to the way of faith to the end. Faith is as precious to die by as to live by.
Dying in faith has distinct reference to the past. They believed the promises which had gone before, and were assured that their sins were blotted out through the mercy of God. Dying in faith has to do with the present. These saints were confident of their acceptance with God, they enjoyed the beams of his love, and rested in his faithfulness. Dying in faith looks into the future. They fell asleep, affirming that the Messiah would surely come, and that when he would in the last days appear upon the earth, they would rise from their graves to behold him. To them the pains of death were but the birth-pangs of a better state. Take courage, my soul, as thou readest this epitaph. Thy course, through grace, is one of faith, and sight seldom cheers thee; this has also been the pathway of the brightest and the best. Faith was the orbit in which these stars of the first magnitude moved all the time of their shining here; and happy art thou that it is thine. Look anew tonight 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thy faith, and thank Him for giving thee like precious faith with souls now in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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