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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이름은 히브리어의 첫 글자인 "브레이쉬트"에서 따온 것으로 "태초에"라는 적절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이 70인역에서 "시작들"을 뜻하는 단어로 번역되었고, 영어에서는 Genesis라고 번역했다.
토라의 다섯권은 전통적으로 그 저자를 한 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 플롯, 주제에 있어서 오경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창세기는 절대적인 연대를 설정할 수 없는 오랜 역사에서 시작해서 성경전체의 역사를 더한 것보다 더 긴 역사를 빠른 속도로 진술하다가 여호와의 약속을 받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속도가 늦추어진다.
역사적 배경
형성과정 및 저작권의 문제
저작권의 문제는 오경의 형성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보수주의 학자들은 다른 노선의 학자들과 심하게 분리되어 있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너무 간단하게 보수주의자들의 견해를 무시해왔고, 보수주의자들은 문서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너무나 성급하게 자신들을 격리시켜 왔다. 또한 모세 이후의 저작 활동들에 대한 증거들로부터 너무 자신을 폐쇄시켜 왔다.
최근의 흐름은 진보주의자들 가운데서오 오경의 주제적 통일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보수주의자들 중에서도 문서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본문과 전통
엄격한 의미에서 토라는 익명의 저자에 의한 것이다. 오경 어디에도 모세가 오경 전체의 직접적인 저자라고 단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은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보는데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비록 오경이 모세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모세가 저술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 여러차례 언급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명하시는 장면들이 있다. 모세가 토라의 많은 부분의 저자라는 것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본문은 그가 계시의 수여자였으며, 구속적인 행위들의 목격자였음을 분명히 한다.
후대의 증언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 책의 형태와 범위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모세의 기록에 대한 성경 내적인 강력한 증거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경을 모세가 썼다는 말이 오경의 모든 부분이 다 그에게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세 사후에 증보된 부분들이 있다. 가장 명확한 곳은 모세의 죽음 부분이다. 또한 모세 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 절의 갈대아 우르에 대한 언급, 에 나오는 지명 단에 대한 언급이 있다. 또한 모세의 것으로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에 나오는 모세가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부분이다.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미묘한 태도로 인정해 왔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본질적 모세 저작설(the essential authorship of Mose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는 정경상의 증보부분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두는 용어인 것이다.
이와함께 우리는 오경을 사용할 때 여러 가지 자료들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절은 야훼의 전쟁기, 은 언약의 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비평적 접근 방법
비평적 입장의 첫 번째 선두주자는 스피노자였다. 그의 생각은 아스튀뤽에 의해서 계승되었는데, 그는 창세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두 개의 문서를 구분해 내었다. 1880년에 이르러서는 네 개의 문서가 일반화된 orsua이 되었다. 문서설의 역사적 전환점은 벨하우젠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이스라엘 역사 서설]에서 출발한다. 벨하우젠의 가설은 당시 전 세계 학계를 흔들었고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벨하우젠은 오경이 네 개의 문서로 이루어 졌음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을 나누는 근거는 첫째,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상이한 사용. 둘째, 중복 기사의 존재. 셋째, 문체의 차이. 넷째, 상이한 신학에서 찾고 있다. 위의 기준을 따라서 그는 네 개의 문서를 구분하였다.
J문서. 여호와 문서로서 저작 연대는 왕정시대 즉 주전 10세기 혹은 9세기로 본다. 이들 문서는 유다에 대해서 긍정적인 언급들을 하고 있으며, 문체는 명쾌하고 직설적이며, 단순성이 있다. J기자는 인간과 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신인동형론적으로 묘사한다.
E문서. 엘로힘 문서로서, J보다 한 세기 이후에 쓰여졌다. E는 비교적 단편적이며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
D문서. 벨하우젠의 공헌 중의 하나가 바로 D와 P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이 문서들은 전적으로 신명기에 연결되어 있다. 신명기의 핵심 부분은 요시야의 치세 중에 성전에서 발견된 문서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주장된다. 그러므로 비평가들은 D문서의 시기를 주전 7세기 요시야 시대의 것으로 간주한다.
P문서. 가장 독특한 자료층을 형성하는데, 이 문서는 연대기, 족보, 의식, 예배, 율법 등에 관심을 가진다. 제사장 직분과 연관있는 것이기에 P문서는 제사문서로 이름 지어진 것이다. P문서는 일반적으로 포로기 이후 시대의 제사장 계층의 역할을 반영하며, 또한 그 시대의 율법에의 순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의 많은 내용들은 이미 이른 시기에 파생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편집자들. 물론 JEDP 네 문서는 단순히 병렬적으로 합쳐진 무엇이 아니라, 편집자에 의해서 창조적으로 합쳐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편집자는 마지막 편집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적인 비평학적 견해들
고전적인 문서설에는 수많은 변이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문서설이 근본적인 의문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단편설적 접근방법
문서설은 네 개의 독립적이고 연속적인 네러티브를 가정하고 있지만, 단편설은 문서들이 원래부터 독립적이고 통일된 문헌이라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단편적인 문서들이 현재의 문서들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보충설적 접근방법
하나의 바탕이 되는 문서가 후대에 증보되거나, 후대의 편집자가 다른 문서와 편집을 했다는 가정을했다.
양식비평과 전승사비평
궁켈은 문서들의 구전적인 기원과 그 시간에 따른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기초해서 노트는 전통적인 문서설 위에서 개별적인 전승군을 설명했다. 그는 여섯가지 기본 주제가 독립적으로 기원하고 발전하다가 후대에 함께 엮어 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렌토르프는 전승사비평과 문서설이 양립할 수 없음을 보였는데, 그는 독립적인 전승들이 개별적인 복합전승들에 포함되고, 후에 더 큰 복합전승군에 포함되어서 최종적으로는 신명기사학파 및 제사장 계층의 수정작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본문이 서로간에 상이한 연속적 문서들이 조잡하게 연결된 것이라고 보는 문서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렌테르프는 옳다.
비평학적인 접근 방법들에 대한 평가
현재 전통적인 문서비평은 모든 학파에서 쇠퇴하고 있다. 대신 오경과 그 안의 개별적인 책들의 최종적ㅇ니 구성 형태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이 문서설을 떠나는데는 문서설 방법론이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들과 본문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방법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았다.
문제들
최근에 문서설에 대한 회의론이 많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문서설에 사용된 여러 기준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의 본문 속에서 신명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이미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둘째, 중복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용된 기법이다. 알터는 이런 중복기사들이 의도적으로 사용된 문학기법임을 잘 보여주었다. 문서를 구분하는 마지막 차이는 신학적인 차이점들인데, 오늘날 벨하우젠이 주장하듯이 종교적인 진화의 흔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문서 분석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대세는 본문의 최종 형태에 있다.
또한 비평주의는 문서들의 범위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일구어 내는데 항상 실패해 왔다. 그러므로 여기에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것은 결국 이 방법론의 학문적인 기초에 의심을 던지게 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본문의 최종형태로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한다.
오경에 대한 최근의 접근 방법들
1980년대 이후 문학적인 접근 방법이 부각되었고, 이것은 창세기 연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창세기가 문학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의 셈족 문화의 기준들에 근거해서 판단해 볼 때 예술적인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문학적인 접근 방법들은 보여주었다.
요약과 결론들
문서가설이 발흥한지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창조적인 시기를 만나고 있다. 새로운 의견의 일치가 어떻게 이루어 질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지만, 비평학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진 않을 듯하다(모세 저작권을 받아들임). 현재는 전승사비평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본문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은 점점더 커질 것이다.
반면에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들도 이젠 오경 이전의 문서들과 모세 이후의 문서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혹은 문서가설의 노선을 따라서 문서들의 존재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것은 없다. 가장 좋은 해석은 자료나, 연대, 문서들의 범위 등에 대해서 교조적주의적인 선을 긋지 말고 그냥 문서들의 존재와 발전과정의 흔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세 이후에 증보된 부분과 모세의 것이 아닌 부분들의 존재는 후대의 것임을 보여주는데 그 범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다.
최종적인 분석을 통해서 볼 때 몇 가지 내적 증거들과 강력한 외적 증거를 따르면 몇가지 모세 이후의 삽입구절들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오경의 상당 부분에 대한 모세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찌되었건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감화를 주시기 위해서 주신 최종형태의 본문에 있다.
문학적인 분석
구조
가장 매혹적인 구조 분석은 톨레도트 구조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창세기는 하나의 서론과 10개의 톨레도트 양식을 따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른 접근 방법은 내용과 문체를 따른 것으로 -11장과 12-50장으로 나누는 것이다. 창세기의 이 두부분은 각각 �님에 의해 시작되는 창조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창세기의 장르
창세기에는 명백한 다양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는 네러티브 플롯에 있어서의 통일성을 가지고 창조에서 애굽에까지 독자들을 인도한다. 중요한 특징인 와우 계속형(waw consecutive)의 빈번한 사용과 톨레도트 문구는 이 책의 역사적인 동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창세기는 순전히 역사적인 기록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창세기는 오히려 신학적인 역사기록이다. 그외의 수많은 접근 방법들 -영웅담, 짧은 소설, 전설, 우화, 기원담, 신화 등-은 기본적으로 창세기의 사실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에서 파생된 것이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시작과 출애굽 그리고 율법 수여에 대한 서론과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며, 그의 가족을 자신의 특별한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의 문학적인 기법
창세기의 탁월한 예술성에 대한 인식은 창세기를 문서설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포켈만의 책(Narrative Art in Genesis의 첫 장인 The Tower of Babel을 보라)
신학적인 메시지
-11장 : 창조로부터 바벨탑까지
창세기가 비록 창조의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지만, 창조의 당위성에 대해서 강조함으로 시작한다. 이 모든 세상의 배후에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보시기에 좋도록 만드셨는데, 3장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어떻게 죄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11장까지 죄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서 더 강화되고 있고, 또한 죄에 대한 심판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11장까지의 가장 놀라운 메시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내와 사랑에 있다.
-36, 38장 : 족장 이야기들
하나님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인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및 그 약속들에 대한 족장들의 반응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39-50장 : 요셉 이야기
요셉 이야기는 족장들의 이야기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동일한 주제의 반복은 동일하다. 오히려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셨던 그 언약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쁜 의도들까지도 지배하시고 계신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신약으로의 접근
-11장에서 등장한 창조는 모든 역사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에덴 동산은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서 잃어버린 모든 것,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다. 이런 창조의 기록은 계시록 21-22장의 지향점으로 신약 계시록은 최초의 창조의 회복을 바라보고 있다. 장의 원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로, 바벨탑 사건은 오순절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회복된다.
-36장의 핵심은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내용인 아브라함 언약을 다룬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또한 장이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고, 요셉이 인류의 구원자의 그림자로 나타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온 인류의 참된 구원을 이루시는 사건이 된다.
토라의 다섯권은 전통적으로 그 저자를 한 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 플롯, 주제에 있어서 오경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창세기는 절대적인 연대를 설정할 수 없는 오랜 역사에서 시작해서 성경전체의 역사를 더한 것보다 더 긴 역사를 빠른 속도로 진술하다가 여호와의 약속을 받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속도가 늦추어진다.
역사적 배경
형성과정 및 저작권의 문제
저작권의 문제는 오경의 형성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보수주의 학자들은 다른 노선의 학자들과 심하게 분리되어 있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너무 간단하게 보수주의자들의 견해를 무시해왔고, 보수주의자들은 문서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너무나 성급하게 자신들을 격리시켜 왔다. 또한 모세 이후의 저작 활동들에 대한 증거들로부터 너무 자신을 폐쇄시켜 왔다.
최근의 흐름은 진보주의자들 가운데서오 오경의 주제적 통일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보수주의자들 중에서도 문서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본문과 전통
엄격한 의미에서 토라는 익명의 저자에 의한 것이다. 오경 어디에도 모세가 오경 전체의 직접적인 저자라고 단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은 오경을 모세의 저작으로 보는데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비록 오경이 모세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모세가 저술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 여러차례 언급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명하시는 장면들이 있다. 모세가 토라의 많은 부분의 저자라는 것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본문은 그가 계시의 수여자였으며, 구속적인 행위들의 목격자였음을 분명히 한다.
후대의 증언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 책의 형태와 범위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모세의 기록에 대한 성경 내적인 강력한 증거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경을 모세가 썼다는 말이 오경의 모든 부분이 다 그에게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세 사후에 증보된 부분들이 있다. 가장 명확한 곳은 모세의 죽음 부분이다. 또한 모세 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것이 절의 갈대아 우르에 대한 언급, 에 나오는 지명 단에 대한 언급이 있다. 또한 모세의 것으로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에 나오는 모세가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부분이다.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미묘한 태도로 인정해 왔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본질적 모세 저작설(the essential authorship of Mose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는 정경상의 증보부분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두는 용어인 것이다.
이와함께 우리는 오경을 사용할 때 여러 가지 자료들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절은 야훼의 전쟁기, 은 언약의 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비평적 접근 방법
비평적 입장의 첫 번째 선두주자는 스피노자였다. 그의 생각은 아스튀뤽에 의해서 계승되었는데, 그는 창세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두 개의 문서를 구분해 내었다. 1880년에 이르러서는 네 개의 문서가 일반화된 orsua이 되었다. 문서설의 역사적 전환점은 벨하우젠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이스라엘 역사 서설]에서 출발한다. 벨하우젠의 가설은 당시 전 세계 학계를 흔들었고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벨하우젠은 오경이 네 개의 문서로 이루어 졌음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을 나누는 근거는 첫째,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상이한 사용. 둘째, 중복 기사의 존재. 셋째, 문체의 차이. 넷째, 상이한 신학에서 찾고 있다. 위의 기준을 따라서 그는 네 개의 문서를 구분하였다.
J문서. 여호와 문서로서 저작 연대는 왕정시대 즉 주전 10세기 혹은 9세기로 본다. 이들 문서는 유다에 대해서 긍정적인 언급들을 하고 있으며, 문체는 명쾌하고 직설적이며, 단순성이 있다. J기자는 인간과 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신인동형론적으로 묘사한다.
E문서. 엘로힘 문서로서, J보다 한 세기 이후에 쓰여졌다. E는 비교적 단편적이며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
D문서. 벨하우젠의 공헌 중의 하나가 바로 D와 P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이 문서들은 전적으로 신명기에 연결되어 있다. 신명기의 핵심 부분은 요시야의 치세 중에 성전에서 발견된 문서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주장된다. 그러므로 비평가들은 D문서의 시기를 주전 7세기 요시야 시대의 것으로 간주한다.
P문서. 가장 독특한 자료층을 형성하는데, 이 문서는 연대기, 족보, 의식, 예배, 율법 등에 관심을 가진다. 제사장 직분과 연관있는 것이기에 P문서는 제사문서로 이름 지어진 것이다. P문서는 일반적으로 포로기 이후 시대의 제사장 계층의 역할을 반영하며, 또한 그 시대의 율법에의 순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의 많은 내용들은 이미 이른 시기에 파생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편집자들. 물론 JEDP 네 문서는 단순히 병렬적으로 합쳐진 무엇이 아니라, 편집자에 의해서 창조적으로 합쳐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편집자는 마지막 편집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적인 비평학적 견해들
고전적인 문서설에는 수많은 변이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문서설이 근본적인 의문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단편설적 접근방법
문서설은 네 개의 독립적이고 연속적인 네러티브를 가정하고 있지만, 단편설은 문서들이 원래부터 독립적이고 통일된 문헌이라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단편적인 문서들이 현재의 문서들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보충설적 접근방법
하나의 바탕이 되는 문서가 후대에 증보되거나, 후대의 편집자가 다른 문서와 편집을 했다는 가정을했다.
양식비평과 전승사비평
궁켈은 문서들의 구전적인 기원과 그 시간에 따른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기초해서 노트는 전통적인 문서설 위에서 개별적인 전승군을 설명했다. 그는 여섯가지 기본 주제가 독립적으로 기원하고 발전하다가 후대에 함께 엮어 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렌토르프는 전승사비평과 문서설이 양립할 수 없음을 보였는데, 그는 독립적인 전승들이 개별적인 복합전승들에 포함되고, 후에 더 큰 복합전승군에 포함되어서 최종적으로는 신명기사학파 및 제사장 계층의 수정작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본문이 서로간에 상이한 연속적 문서들이 조잡하게 연결된 것이라고 보는 문서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렌테르프는 옳다.
비평학적인 접근 방법들에 대한 평가
현재 전통적인 문서비평은 모든 학파에서 쇠퇴하고 있다. 대신 오경과 그 안의 개별적인 책들의 최종적ㅇ니 구성 형태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이 문서설을 떠나는데는 문서설 방법론이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들과 본문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방법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았다.
문제들
최근에 문서설에 대한 회의론이 많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문서설에 사용된 여러 기준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의 본문 속에서 신명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이미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둘째, 중복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용된 기법이다. 알터는 이런 중복기사들이 의도적으로 사용된 문학기법임을 잘 보여주었다. 문서를 구분하는 마지막 차이는 신학적인 차이점들인데, 오늘날 벨하우젠이 주장하듯이 종교적인 진화의 흔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문서 분석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대세는 본문의 최종 형태에 있다.
또한 비평주의는 문서들의 범위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일구어 내는데 항상 실패해 왔다. 그러므로 여기에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것은 결국 이 방법론의 학문적인 기초에 의심을 던지게 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본문의 최종형태로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한다.
오경에 대한 최근의 접근 방법들
1980년대 이후 문학적인 접근 방법이 부각되었고, 이것은 창세기 연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창세기가 문학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의 셈족 문화의 기준들에 근거해서 판단해 볼 때 예술적인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문학적인 접근 방법들은 보여주었다.
요약과 결론들
문서가설이 발흥한지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창조적인 시기를 만나고 있다. 새로운 의견의 일치가 어떻게 이루어 질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지만, 비평학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진 않을 듯하다(모세 저작권을 받아들임). 현재는 전승사비평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본문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은 점점더 커질 것이다.
반면에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들도 이젠 오경 이전의 문서들과 모세 이후의 문서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혹은 문서가설의 노선을 따라서 문서들의 존재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것은 없다. 가장 좋은 해석은 자료나, 연대, 문서들의 범위 등에 대해서 교조적주의적인 선을 긋지 말고 그냥 문서들의 존재와 발전과정의 흔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세 이후에 증보된 부분과 모세의 것이 아닌 부분들의 존재는 후대의 것임을 보여주는데 그 범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다.
최종적인 분석을 통해서 볼 때 몇 가지 내적 증거들과 강력한 외적 증거를 따르면 몇가지 모세 이후의 삽입구절들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오경의 상당 부분에 대한 모세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찌되었건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감화를 주시기 위해서 주신 최종형태의 본문에 있다.
문학적인 분석
구조
가장 매혹적인 구조 분석은 톨레도트 구조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창세기는 하나의 서론과 10개의 톨레도트 양식을 따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른 접근 방법은 내용과 문체를 따른 것으로 -11장과 12-50장으로 나누는 것이다. 창세기의 이 두부분은 각각 �님에 의해 시작되는 창조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창세기의 장르
창세기에는 명백한 다양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는 네러티브 플롯에 있어서의 통일성을 가지고 창조에서 애굽에까지 독자들을 인도한다. 중요한 특징인 와우 계속형(waw consecutive)의 빈번한 사용과 톨레도트 문구는 이 책의 역사적인 동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창세기는 순전히 역사적인 기록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창세기는 오히려 신학적인 역사기록이다. 그외의 수많은 접근 방법들 -영웅담, 짧은 소설, 전설, 우화, 기원담, 신화 등-은 기본적으로 창세기의 사실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에서 파생된 것이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시작과 출애굽 그리고 율법 수여에 대한 서론과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며, 그의 가족을 자신의 특별한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의 문학적인 기법
창세기의 탁월한 예술성에 대한 인식은 창세기를 문서설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포켈만의 책(Narrative Art in Genesis의 첫 장인 The Tower of Babel을 보라)
신학적인 메시지
-11장 : 창조로부터 바벨탑까지
창세기가 비록 창조의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지만, 창조의 당위성에 대해서 강조함으로 시작한다. 이 모든 세상의 배후에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보시기에 좋도록 만드셨는데, 3장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어떻게 죄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11장까지 죄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서 더 강화되고 있고, 또한 죄에 대한 심판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11장까지의 가장 놀라운 메시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내와 사랑에 있다.
-36, 38장 : 족장 이야기들
하나님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인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및 그 약속들에 대한 족장들의 반응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39-50장 : 요셉 이야기
요셉 이야기는 족장들의 이야기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동일한 주제의 반복은 동일하다. 오히려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셨던 그 언약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쁜 의도들까지도 지배하시고 계신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신약으로의 접근
-11장에서 등장한 창조는 모든 역사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에덴 동산은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서 잃어버린 모든 것,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다. 이런 창조의 기록은 계시록 21-22장의 지향점으로 신약 계시록은 최초의 창조의 회복을 바라보고 있다. 장의 원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로, 바벨탑 사건은 오순절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회복된다.
-36장의 핵심은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내용인 아브라함 언약을 다룬다.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또한 장이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고, 요셉이 인류의 구원자의 그림자로 나타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온 인류의 참된 구원을 이루시는 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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