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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고 고난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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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고 고난 받는 것”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전서 2:19-20)

사도 베드로는 사환들에게 이 명령을 전합니다. 그는 사환들이 까다로운 종들에게도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신자는 일터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상급자를 존대하는 것은 복음을 살아내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상급자가 신자든지, 비신자이든지 간에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의의 문제까지 타협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법과 양심까지 어기면서 상관에게 복종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가 아닌, 일터의 다양한 국면에서 우리는 순종의 본, 인내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어지는 다음 장에서 비신자 남편을 둔 아내를 권면하며 동일한 내용을 말합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베드로전서 3:1-2)

사도는 까다로운 상전을 둔 사환, 복음을 거부하는 남편을 둔 아내 등을 상대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흩어진 나그네들”을 격려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시하시는 해법은 다름 아닌 “고난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냥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받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선을 행하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아도 인내하면 주께서 그것을 아름다운 예배로 받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신자의 소명(召命)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21)

선행한 후에 칭찬을 듣고 영광도 취하는 것은 예수님의 길이 아닙니다. 성도는 선을 행하되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무 죄없이 죽임을 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위해 최고의 선을 베푸셨습니다. 부유함과 명예를 원하십니까? 예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체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사도는 타협하지 않고 이 교리를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9)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신자는 고통을 탐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성경의 명령이요, 참 행복의 길임을 믿기에 묵묵히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감내하며 선을 행하는 삶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음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장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이미 허락하신 영생을 누리며, 오늘도 노래하며 갑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합니다. 친구여, 이 소명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영광스럽게 걸어갑시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베드로전서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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