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서상륜, 권서(勸書)”
오늘은 서상륜(徐相崙 1849-1925)이 출생한 날입니다. 1849년 7월 19일, 서상륜은 평안북도 의주에서 서석순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홍삼, 비단 및 약재 등을 판매하던 서상륜은 만주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중 매킨타이어 선교사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서상륜은 선교사들의 극진한 치료와 간호로 회복된 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스 선교사가 진행하던 우리말 성경번역 사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심양에 자리를 잡았던 로스 선교사는 서상륜과 서툰 조선어로 의사소통하면서 날이 갈수록 조선에 대한 지식이 늘어갔다. 서상륜 또한 이미 이응찬을 통하여 한자로 된 『예수성교문답』, 『예수성교요령』을 받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열심히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서상륜의 열심에 놀란 로스 선교사는 좋은 협력자라는 사실을 안 후 그의 도움을 받아 성서번역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상륜의 믿음을 보고 세례를 받기 전에 몇 가지 문답을 실시하였다……이때 로스 선교사는 서상륜의 거침없는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장차 서상륜과 함께 일할 자신의 사무실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것이다. 이 일은 두 번째로 세례식을 거행했던 역사적인 사건으로 1879년에 이루어졌다.[김수진, 『한국 기독교 선구자 서상륜』 (서울: 진흥, 2009), 59-60.]
서상륜은 정부로부터 선유사(宣諭使)의 직임을 받았지만 이내 내려놓고 다시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의 공식직함은 권서(勸書)였습니다. 권서는 매서인(賣書人, colporteur)이라고도 불렸는데, 성경과 신앙서적 및 전도지를 파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권서는 오지(奧地)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한 전도인이기도 했습니다. 배낭 안에 우리말로 번역된 구약과 신약, 천로역정을 가득 채운 권서 서상륜을 통해 배웁시다. 믿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이 있다면 말 위에 책을 가득 싣고 간도(間島)든 심양(沈陽)이든 관계없이 길을 나섰던 구령의 열정이 아름답습니다. 책을 통한 전도를 회복시킵시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경건 서적을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상륜은 1882년 10월 영국성서공회에 의해 한국 교회사상 최초의 권서로 임명되어 많은 성경을 짊어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압록강 세관에서 갖고 간 성경은 모두 빼앗기고 검사관의 호의로 몸만 빠져 나와 고향 의주에 돌아온 후 전도하였다. 그러나 서상륜이 기독교를 전도한다는 사실이 관가에 알려져서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므로, 그는 삼촌이 살고 있는 황해도 장연(長淵)의 갯마을 송천(松川, 솔래 또는 소래)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 가서도 열심히 전도하여 결신자를 얻게 되었다. 서상륜에 의해 솔내에는 조그만 초가집을 예배당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한국 개신교회의 첫 번째 교회가 되었다. 후에 솔래는 58세대 중 50세대가 예수를 믿었고 1895년 예배당까지 마련했는데 이 예배당이 장로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세워진 예배당이라고 언더우드 부인 릴리아스 언더우드(Lillias H. Underwood)는 기록하였다.[김인수,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 上』 (서울: 쿰란출판사, 2012), 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