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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7월 31일,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 1808-1889)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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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호라티우스 보나르, 이 세상에 게으른 목사보다 더 해로운 사람은 없다.”

오늘은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 1808-1889)가 별세한 날입니다. 1889년 7월 31일, 80세의 보나르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든버러(Edinburgh) 대학에서 수학한 보나르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교역자이자, 시인, 저술가였습니다. 그는 600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지었는데, 우리나라 찬송가에서도 보나르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가 작사한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Here, O my Lord, I see Thee face to face)[통일찬송가 285장(새228)]를 음미해 봅시다.

2. 주님의 떡을 내가 먹으며 Here would I feed upon the bread of God
주님의 잔을 내가 마시고 Here drink with Thee the royal wine of heaven
근심의 짐을 벗어버리니 Here would I lay aside each earthly load
죄사함 받아 내 맘 새롭다 Here taste afresh the calm of sin forgiven
3. 주 예수 밖에 도움 없어서 I have no help but Thine, nor do I need
주님의 팔에 의지합니다 Another arm save Thine to lean upon
주 권능으로 힘이 솟아서 It is enough, my Lord, enough indeed
주 안에 내가 만족합니다 My strength is in Thy might, Thy might alone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총회장(Moderator)을 역임하기도 했던 보나르는 영혼을 겸비케 하는 설교자였습니다. 저는 그의 책 『영혼을 인도하는 이들에게 주는 글(Words to Winners of Souls)』을 읽으며 느슨해진 영혼의 근육을 긴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보나르가 “이 세상에 게으른 목사보다 더 해로운 사람은 없다.”는 세실(Cecil)의 말을 인용하며 아간과 같은 이들에게 경고할 때,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1651년 스코틀랜드 교역자들의 회개목록 중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사역에 임하는 대신, 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내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역에 임한 죄”를 언급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보나르의 저술은 겸손히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모든 고난은 죄를 관통하는 못이며, 육에 대한 또 다른 타격입니다. 그것은 죄의 힘을 파괴합니다. 우리가……태어나면 죄의 사슬이 우리를 결박하며, 하나씩 이어지는 사슬고리가 우리를 얽어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나은 생명을 얻어 새롭게 되기 시작할 때 이러한 사슬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고난은 이 고리를 더욱 속히 풀리게 합니다. 이 땅의 마지막 고리는 우리가 죽음에 이르거나 예수께서 오셔야만 완전히 풀리겠지만, 계속되는 시련이 복된 종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죄와 악한 행실과 유혹을 벗어나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더욱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만 있다면, 일생 동안 당하는 고난은 그리 길거나 무거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우리와 세상을 가르는 쐐기처럼 사용하십니다. 즉, 고난을 마치 보습과 같이 사용하시어 우리가 세상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할 때까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희망이나 전도유망한 장래를 갈아엎으십니다.[Horatius Bonar, When God’s Children Suffer, 황의무 역,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 (서울: 지평서원, 2009), 1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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