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오늘은 칼빈이 자신의 창세기 주석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1563년 11월 30일,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세오경 주석의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이유는 독자들을 위해서입니다. 또한 번역하면서 (라틴어 주석에 있는) 많은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CO, 20:199.)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작업을 수행할 당시 칼빈은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CO, 21:42.) 번역을 시작하고6개월 후, 그는 고단한 인생길을 마감했습니다.
“질병의 적들은 일 대 일로, 혹은 편대를 이루어, 혹은 집단으로 나를 공격해 옵니다.” 칼빈은 자신의 병을 돌보는 몽펠리에의 의사 몇 사람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20년 전부터 두통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관절염과 응혈은 팔다리 관절을 자유롭게 쓰게 못하게 하였습니다. 신장 결석은 크기가 커서 칼로 베는 것 같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가슴은 무거운 추가 누르는 것 같은 압박을 느꼈고,호흡을 할 때마다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불평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여행을 떠난 베자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습관대로 늘 7시면 잠자리에 드는데,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 편지를 써서 보냈군요. 하지만 병든 노인은 그럴 수밖에 없답니다.”(Thea B. Van Halsema, This was John Calvin, 강변교회 청소년학교 도서위원회 역, 『이 사람 존 칼빈』 (서울: 성약, 2007), 306.)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칼빈은 가족 가운데 일어난 두 번째 간통 사건으로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사별한 아내 이들레트의 딸 주디스는 결혼 6년 만에 간통죄를 저질렀고, 치리회 앞에서 이를 인정했습니다. 칼빈은 며칠 동안 시골에 다녀온 후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칼빈의 건강을 염려하여 휴식을 권했지만 그는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습니다. “뭐라고요? 주님이 오실 때 내가 게으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시기를 원합니까?”(『이 사람 존 칼빈』, 308.)
칼빈은 자신의 건강 문제에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 문제에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성령께서는 죽음을 앞둔 칼빈을 사로잡아 사용하셨습니다. 칼빈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제네바에서 외국인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를 잊지 않았고, 고국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한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문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까? 고난의 수렁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Me Vidit Deus)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주여, 오늘도 게으르고 악한 나를 일으켜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