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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슨 목적에 이르게 되는가? [기독교강요(상)44-49, 존 칼빈, Institutes of the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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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들까지도 두려움을 피해 그들의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되었거늘(사 6:10) 하물며 부패하고,(욥 13:28) 버러지에 지나지 않는(욥 7:5, 시 22:6) 인간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왕이 되시고‥‥‥"(사 24:23)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광채를 나타내시며 보다 더 가까이 발하실 때에는, 가장 빛나던 광채들도 그 앞에서 어두워지게 된다는 것이다(사 2:10,19).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먼저는 전자에 대해 논하고 다음 후자를 논하는 것이 정당한 순서일 것이다. 제 2 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슨 목적에 이르게 되는가? 1.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실제로는 경배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그의 영광에 얼마나 합당하며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바로 말해서 종교(religion) 또는 경건(piety)178)이 없는 곳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타락하여 저주받은 인간이, 중보자 그리스도를 구속주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그런 종류의 지식에 대하여는 아직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아담이 자기의 무죄함을 그대로 보존하였더라면,179) 우리는 자신의 참된 질서에 따라 살게 되었을 것이라는 그 근본적이며 단순한 지식에 대해서만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성이 오늘날 같이 파괴된 상태에서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화목 시키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거나 구원의 창시자로 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또한 어떤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호의를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섭리로 다스리시며, 선하심으로 양육하시며, 각종의 축복으로 우리를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화목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우주의 창조와 성경의 일반적인 교훈에서 자신을 창조주로 나타내셨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안에서(고후 4:6 참조) 자신을 구속주로 보여 주셨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에 관한 이중의 인식이 생기는데180) 우리는 여기서 전자를 먼저 생각하고, 후자는 적당한 곳에서 다루고자 한다.181) 더욱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그를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선의 근원이시며, 그 분 밖에서는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지 않는 한, 단순히 하나님을 경외와 찬양의 대상으로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무한하신 권능으로 유지하시며, 지혜로 그것을 다스리시며, 선으로 보존하시며, 특히 인류를 의와 심판으로 지배하시며, 자비로 참으시며, 보호하심으로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지혜, 빛, 의, 권능, 공의, 참된 진리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하나님을 그 원인으로 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에게서 바라고, 그에게서 찾으며, 또한 이미 받은 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그에게 돌리기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식하는 것은,182) 종교를 낳게 하는 경건을 우리에게 올바로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을 말하는데, 이 사랑은 그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써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는 것,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으로 양육을 받고 있다는 것,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결코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이 완전한 행복을 하나님 안에 두지 않는 한, 진정으로 중심에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할 것이다. 2.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신뢰와 경외를 포함한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다만 헛된 추측으로 장난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보다는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그의 본성과 일치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183) 에피큐로스(Epicurus)가 말한 것처럼, 세계를 돌보지 않고 다만 안일에 빠져 있는 그런 종류의 신이 있다고 고백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184) 간단히 말해서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의 지식은 먼저 두려움과 경외를 가르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둘째로는 우리의 안내자요 교사가 되는 이 지식으로 우리는 일체의 선을 하나님에게서 찾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므로 또한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의 권리에 따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 자기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계획과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사실 등을 즉시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인간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생활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쳐지지 않는 한, 그것은 극도로 부패해져 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지야말로 인간 생활의 법칙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선의 근원이며 원천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부패성이 그의 마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찾지 못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매달리고자 하는 욕망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건한 마음은 처음부터 오직 한 분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뿐, 어떤 공상적인 신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공상을 하나님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그대로를 믿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혹은 경솔하고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의지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최선의 열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은 만물이 그의 지배하에 있음을 알고, 그가 만물의 안내자요 보호자이심을 믿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의 창시자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나 궁핍할 때에는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의 보호를 구하며, 그의 도우심을 기대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알고 있으므로 그를 완전히 신뢰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재난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주(主)와 아버지로 인정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며, 그의 취임을 경외하며,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힘쓰며, 또한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을 공의로우신 심판장이시며 죄를 엄하게 벌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 까닭에 항상 하나님의 심판석이 자기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그를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지식은 매우 무서운 것이기는 하나 그러한 사람은 비록 피할 길이 열려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악한 자를 벌하시는 분으로 알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건한 신자에게 영생의 상급을 주시고 경건치 못하며 사악한 자를 벌하시는 것이 다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그가 죄를 억제하는 것은 다만 형벌에 대한 공포에서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며 경외하기 때문에 그를 주로 예배드리며 찬양하는 것이다. 만일 지옥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생각은 그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몸서리나는 생각일 것이다. 여기에 실로 순수하며 참된 종교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엄숙한 두려움과 결합된 신앙인 것이다.185)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자발적인 경외를 포함하고 있으며, 율법에 규정된 것과 같은 정당한 예배를 수반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곧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되 아무 뜻 없이 하고 있으며, 다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진심으로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의식이 화려한 허식으로 있는 곳마다 마음의 진실성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다. 제 3 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자연적으로 뿌리 박혀 있었다.186) 1. 이 자연적 은사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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