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출애굽기 1-40장 [쉬운성경] Book of Exodus [너희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예배하도록 내가 정하여 준 곳이면 어디든지, 내가 가서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

반응형

1. 표제 오경의 다른 네 책들과 마찬가지로 출애굽기는 유대인들에 의하여 히브리어 성경의 첫 귀절을 따라서 “워엘레 셔모트”(We’eleh shemoth: 그리고 이름은 이러하니)라고 일컬어진다. “출애굽기”(Exodus)라는 이름은 두 개의 헬라어 단어가 복합된 것으로써, “엑스-호도스”, 즉 “출구” 또는 “탈출”을 의미한다. 물론 이 “탈출”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으로부터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말한 것으로써, 맨 처음에 70인역에서 사용된 것을 라틴어 성경(Vulgate)이 차용하고, 이것을 다시 영어 성경에 그대로 전용(轉用)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이 명칭은 그 책의 중심되는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세의 두번째 책”이란 부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후대에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 분명하다. 2. 저자 출애굽기의 저자에 관한 문제는 오경의 모든 책들, 특히 출애굽기가 그것의 속편(續編)인 창세기의 저자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출애굽기는 그 책 가운데 어떤 특정한 부분들의 저자로 모세를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오경의 저자를 규명하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모세는 아말렉인들과의 싸움을 “책에” 기록했음이 분명하다(출 17:14; 민 33:2). 그가 출 20:21-23:33에 포함된 율례(律例) 곧 “언약서”(출 24:7)를 기록했음이 출애굽기 24:4에서 분명해진다. 출애굽기 34:27에 의하면, 그가 11-26절에 기록된 계시의 저자이다. 이와 같이 출애굽기 책 전체에 간직된 증거들이 그 책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 및 다른 기록들의 저자로서 특별히 모세를 가리키고 있다. 모세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개인도 오경 가운데서 그것의 일부를 기록한 것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이 책 초반부에 나타나는 허다한 애굽 언어의 사용과 애굽인의 생활과 관습에 대한 정확한 묘사 등은 그 저자가 애굽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 나라와 그것의 문화에 대하여 매우 잘 알고 있었음을 강하게 나타낸다. 요셉의 시대 이후로 출애굽의 이야기를 쓸 만한 자격을 갖춘 다른 히브리인은 아무도 알려지지 않았다. 오로지 모세만이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웠”다(행 7:22). 그런데 모세 저자설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신약에서 찾을 수 있다. 막 12:26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출 3:6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의 말씀의 출처가 “모세의 책”임을 명시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사항들­그 책 자체의 직접적인 증언, 저자가 애굽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간접적인 증거,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언­은 모두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했다고 하는 유대인의 전통의 정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3. 역사적 배경 모세의 첫번째 책 창세기는 세계의 창조로부터 부조 시대의 마지막까지에 걸친 여러 세기 동안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속편(續編)인 출애굽기는 그 처음 두 장에서 약 80년의 역사를 개괄할 뿐,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단지 1년여의 기간에 일어난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고고학적인 증거의 결여로 말미암아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인들의 역사에 관한 여러가지 점들을 우리가 확정짓지는 못할지라도, 요셉과 야곱이 힉소스(Hyksos)시대 동안에 애굽에 들어갔다는 결론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셈족 계통의 통치자들인 힉소스 왕조는 그들과 인종적 연관이 깊은 히브리인들에 대하여 우호적이었고, 그들의 통치 아래서 요셉은 존귀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외부로부터의 침입자요 지배자로서 힉소스 왕조는 비록 그들이 수완(手腕)있게 다스리고 신하들의 복리(福利)를 위해 일하였으나, 본토인인 애굽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기가 일쑤였다. 힉소스 족속이 약 150년 동안(1730-1580 B.C.) 애굽을 통치했을 때, 상부 애굽의 애굽인 지방 제후(諸侯)이자 힉소스 왕조의 봉신(封臣)이었던 세케넨레(Sekenenre)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역에 관한 기록은 좀 더 후기의 한 전설적인 이야기 가운데 나타나는데, 애굽의 독립을 회복하려는 그의 기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미이라는 머리에 끔찍한 상처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필경 그가 힉소스 족속과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당한 비참한 죽음을 말없이 증거하는 것일 것이다. 자유를 위한 진정한 투쟁은 세케넨레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카모세(Kamose)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힉소스 족속을 상부 및 중부 애굽으로부터 추방하고 그들의 세력을 동부 삼각주 지역에 국한시키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카모세는 힉소스 족속의 완전한 추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 일은 그의 동생 아모세(Ahmose)에 의하여 성취되었는데, 그는 미움의 대상인 원수들을 격퇴시키고 그들의 수도 아바리스(Avaris)를 항복시켰다. 아바리스의 함락으로 힉소스 족속은 애굽에서의 그들의 최후의 보루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은 그 후에 남부 팔레스틴에 있는 샤루헨으로 물러났으나, 이번에는 3년 간의 전역(戰役) 끝에 아모세에게 또 정복당하였다. 샤루헨을 빼앗긴 것과 그 결과로 힉소스 족속이 다시 북쪽으로 퇴진한 것은 그들의 세력의 종언(終焉)을 고하고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짐을 의미했다. 힉소스 족속을 성공리에 격퇴시키자, 테베스(Thebes)의 통치자들은 전 애굽의 무적의 군주들이 되었다. 제18왕조의 왕들로서 그들은 애굽을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누비아와 팔레스틴을 정벌하기까지 하여 부강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요셉을 알지 못하던”(출 1:8) 그 통치자들로서는 동부 삼각주의 고센(Goshen) 땅을 점령하고 있던 이 낯선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꺼림직하게 보는 것이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본토인인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신뢰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힉소스 종족의 통치하에서 그곳에 정주했었으며, 인종적으로도 그들과 연관이 있었고, 또한 그들에게서 호의와 후대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제18왕조의 왕들의 연대기는 아직도 확정적으로 고정되지는 않았다. 다음의 연대들은 가장 신빙성 있는 증거에 기초하기는 하였으나 대략적으로 일치할 따름이다. 아모세를 계승한 사람은 남쪽과 서쪽을 정벌했던 아멘호테프 Ⅰ세(AmenhotepⅠ, 1546-1525 B.C.)였다. 그의 아들 투트모세 Ⅰ세(ThutmoseⅠ, 1525-1508 B.C.)는 시리아 정벌을 나가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렀던 사람으로서 그의 신전들을 건축하는 일에 아시아인 노예들을 부렸다는 기록을 가진 첫 왕이 되었다. 여기서 아시아인이라 함은 히브리인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투트모세 Ⅰ세를 계승한 사람은 그의 연약한 아들 투트모세 Ⅱ세(1508-1504 B.C.)였고, 이 사람이 죽은 뒤에는 투트모세 Ⅰ세의 딸인 핫셉수트(Hatshepsut)가 22년 동안(1504-1482 B.C.) 애굽을 평화롭게 통치하였다. 바로 이 여인이 모세의 양모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모세의 생애의 첫 40년 간이 투트모세 Ⅰ세,Ⅱ세 그리고 핫셉수트의 통치 기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성경 연대기에 의하면, 모세는 투트모세 Ⅲ세의 단독 통치가 시작되기 몇년 전에 애굽으로부터 도피하였다. 핫셉수트의 통치 초기에 사제들이 봉기하여 그녀로 하여금 그녀의 조카 투트모세 Ⅲ세의 섭정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였다. 그 후에 핫셉수트는 갑자기 사라졌는데, 이것은 강제로 축출당했음을 암시할 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교체된 것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되듯이, 핫셉수트가 모세를 양자로 삼은 바로의 공주인 것이 사실이라면, 사제들의 이 반란은 모세가 사제 계급의 일원이 되기를 거절한 결과로써 일어났을 것이다. 투트모세 Ⅲ세가 단독 통치자(1482-1450 B.C.)가 되자마자, 그는 팔레스틴으로 출정(出征)하여 므깃도에서 시리아와 팔레스틴 제후들의 연합군을 격퇴시켰다. 그가 연례적인 출정을 통하여 세력을 과시한 나머지, 그의 제국은 아시아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그의 조부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의 신전 건축 계획에 아시아 노예들을 고용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이 통치자가 모세의 신변을 위협하여 도망하게 한 애굽의 바로였을 것이다. 투트모세 Ⅲ세 다음에 그의 아들 아멘호테프 Ⅱ세가 왕위에 올랐다(1450-1425 B.C.). 그는 그의 신민들 중에서 이국민에 대해서는 계획적인 위압책(威壓策)을 실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점은 출애굽 당시의 바로의 역할과 두드러지게 조화를 이룬다. 성경 이외의 기록들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어떤 이유 때문에 아멘호테프 Ⅱ세를 계승하여 왕위에 오른 사람은 그의 태자가 아니었고, 그의 다른 아들인 투트모세 Ⅳ세(1425-1412 B.C.)였다. 아멘호테프 Ⅱ세의 태자가 사라진 것은 애굽에 내린 열째 재앙 때에 모든 장자들이 죽임을 당한 사실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형편이 곧 출애굽기에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된 극적인 사건들의 역사적 배경이다. 출애굽기에 관한 성경 이외의 기록들이 하나도 현존하지 않는 것은 애굽인들이 그들에게 불리한 사건들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주제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한 주된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을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해 내심으로써 보여주신 그의 놀라운 개입, 그리고 그들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심으로써 보여주신 그의 은혜로운 겸비를 묘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반복된 불충성이나 지상의 가장 강대한 나라의 반대라 할지라도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없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마치 한 줄의 황금실[絲]과도 같이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다. 출애굽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젊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호소하여 더욱 큰 용기를 얻게 하고, 연만(年滿)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준다. 이 책의 내용들은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고 그의 영도력을 신뢰할 것을 가르치며, 또한 그가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겸손히 따라갈 것을 우리에게 명하고 있다. 5. 개요 Ⅰ. 애굽에서 나옴 1:1-15:21 1. 애굽의 체류 생활 1:1-22 (1)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 1:1-6 (2)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번성하고 핍박받음 1:7-22 2. 모세가 지도자로서 준비됨 2:1-4:31 (1) 출생, 생명을 건짐, 모세의 젊은 시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