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창세기 24:6-7)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아들 이삭을 결혼시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복을 약속하셨기에, 그는 이삭이 혼인하여 자녀를 낳는 것을 보기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 신부를 구해오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사자”(his angel)를 앞서 보내사 순적하게 신붓감을 만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기적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본문의 배후에서 치밀하게 일하십니다.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하시고, 리브가의 마음을 변하게 하시며, 가족들의 승낙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된 일들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섭리에 대해 아름답게 표현한 것을 주목하여 들어보십시오.
27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답: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섭리를 기계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게 순종하는 사람을 인도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운운하면서 게으름과 나태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의 자비로운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나이가 많았지만, 먼 길을 여행하는 수고를 감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수고에 복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또한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고,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삭의 신부가 될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창24:15). 성도여, 당신의 의무를 다하십시오.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 때, 은혜로운 섭리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창세기 24:58)
리브가는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삭과 리브가의 가문을 통해 세상에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부 리브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 우리는 바울처럼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분을 따랐습니다(갈1:16). 그러한 결단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리브가는 아직 이삭을 보지도, 그의 유산을 확인하지도 못했지만, 아브라함의 종이 준 선물을 보증으로 삼아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신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신자 역시 눈으로 예수님을 보거나, 온전한 천국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분께서 주신 성령님을 보증으로 삼아 믿고, 천성을 향해 전진합니다. 친구여,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왔듯이, 성령님은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결단하십시오. 교회의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