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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장 [쉬운성경]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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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특징 본서와 공관복음서의 유사성은 쉽게 판별되는데, 본서는 그 중심인물로 공관복음서와 동일한 사람을 등장시킨다. 우리는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 인자, 메시야, 주님, 구세주로 묘사된 것을 본다. 그러나 그런만큼 차이점들 또한 뚜렷하다. 공관복음서가 단 한 번의 유월절만을 언급하여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듯한 반면, 요한복음은 적어도 세 번에 걸친 유월절을 언급하는데 (2:23,6:4,13:1) 그것은 공생애 기간이 3년 이상이었음을 암시한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거의 모두 갈릴리에서 행해지는 반면 요한복음은 유대땅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강조하며 갈릴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주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제 4복음서의 강화는 대부분이 예수님 자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영적 필요에 없어서는 안될 그 분에게 집중되어 있다.('나는 ...이노라'를 참조하라. 6:35,8:12,11:25등).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요2장)와 공관복음서의 기록대로 예수님의 공생애 말기에 각각 있었던 두번의 성전 정화 기사처럼 되풀이된 사건 혹은 유사한 사건은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또 하나의 실례는 요한복음(1장)에서는 제자들을 유대 땅에서 처음 만나고 후에 갈릴리에서 그들의 소명을 확증한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에, 공관복음서에서는 그들이 갈릴리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 사실이다. 본서에서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때에 (1장) 이미 메시야로 간주되고 있는 반면,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가 메시야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진술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데 그것은 가이샤랴 빌립보에서 행한 베드로의 고백(마태 16:16)을 베드로가 그 때 처음으로 확신에 이른 것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14:33을 참조하라). 이전에 깨달은 진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통하여 심화되었다. 2. 저자 저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는 '사랑하시는 제자(21:20,23,24)'요 베드로의 측근에 있는 동역자라고 지적되어 왔다. 이레니우스는 이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 요한(21:2을 참조하라)이라는 고대 교회의 증언을 이야기한다. 어떤 학자들은 배운 바도 없고 미숙하기 그지 없는 사람(사도행전 4:13)이 요한복음과 같은 저술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요한의 능력을 평가함에 있어 저작 시기, 동기 및 성령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한다. 3.저작 시기 및 장소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그의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는데 그 곳에서 그는 설교하고, 가르치며 저술 활동을 하였다. 도미티안 황제가 통치할 때에 그는 바로 이 곳에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복음서는 공관복음서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으며, 따라서 복음서들 가운데 마지막에 자리하였고 그 시기는 대략 주후 80-9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애굽에서 발견된 본서의 단편들이 주후 2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 저작 시기는 주후 1세기 이내임을 알수 있다. 4. 저작 목적 이것은 요한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료의 선택은 정확히 이러한 결론이 내려지도록 계획되어진다. 부수적인 목적으로는,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는 가현설에 대한 논박(1:14을 참조하라), 그리고 유대교가 약속된 메시야를 거절함으로써 죄중의 죄를 범한 부적합한 종교체계임을 폭로하는 것(1:11)등을 들 수 있다. 5. 신학적 메시지 요한복음은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면서 또한 가장 심오하다. 이에 사용된 언어는 매우 순수하고 간결한 헬라어이므로 초학도들은 거의 대부분이 요한복음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러나 본서의 신학적 통찰력이 매우 깊고 광범위하여 최고 수준에 있는 기독교 사상가들도 본서의 메시지를 완전히 깨달을 수는 없었다. 초학도에게는 '첫 독본'으로, 신학자에게는 고급 교재로서 요한복음을 능가할 것은 결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이 놀라운 책을 생기게 한 하나님의 영감에 대한 분명한 증거이다. 공관복음서 는 북적거리는 시장, 고속도로에서의 움직임 등과 같이 씌어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한 인간이 고요한 대성전에 들어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성윽하신 말씀에 대한 심오한 내용을 명상하게 된다. 마태복음이 다윗의 자손을 마가복음이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고 누가복음이 구세주를 각기 주제로 강조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영원하신 아들인 로고스(말씀)로서의 예수님을 주제로 강조한다. 그 분은 세상이 세워지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세상이 창조될 때에는 하나님의 집행자(agent)이셨다.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서 '나는 ... 이니라'라는 말씀이 되풀이 된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 '나는 선한 목자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이니라' 어구는 구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어구이다. 이 말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사용된(여호와에 의해 표현된) 하나님의 이름이 '나는 ...이니라'라는 동사에 기초하고 있기때문이다. (출애굽기 3:14를 참조하라). 분명히 이러한 '나는 ...이니라'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간주하고 있다. 초대 기독교도였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시하였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은 또한 예수님의 이적을 표현이라는 강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복음서이다. 표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세메이아'인데, 그것은 요한이 표적이라고 말한 예수님의 이적들이 단순히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놀라게하고 심지어는 병을 고치거나 도와주려 하는 위대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수님은 만민을 사랑하셨으며 개개인의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활동하셨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 중에서 선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적들을 모두 기록한다면 이 세상도 그 책을 보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그 분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고치시고 문자 그대로 눈먼 자에게 빛을 주심으로 이 말을 더욱 강하게 전하신다. 예수님은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5,000개의 떡을 주신다. 그러나 그는 진실로 이르시기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영적 생활을 살지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온 떡을 먹어야 하느니라"고 하신다. 요한의 신학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표적들과 '나는 ...이니라' 어구 사이의 멋진 조화이다. 요한은 또한 우리에게 보혜사 즉 위로하시는 이의 오심에 대하여 유일하게 말하고 있는 성서 기록자이다.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오실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이 자신에 대해 증거할 것이나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이 떠나신 후 비로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떠나시는 편이 더 나을 것인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세상은 그를 영접할수 없으나 그는 세상과 형원히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복음은 또한 성령에 대한 복음이다. 요한 복음(요한福音, 그리스어: κατὰ Ἰωάννην εὐαγγέλιον,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κατὰ Ἰωάννην, 라틴어: Evangelium secundum Ioannem, 영어: Gospel of John, Gospel According to John) 또는 단순히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 더불어 4복음서를 이루는 복음서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본서 제목이 ‘카타 이오안넨’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요한에 의한’(According to John)이란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근거하여 오늘날 모든 성경들은 본서를 ‘요한복음’이라 부른다. . 첫 번째 / 시간의 개념에서 영원에서 물질의 세계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하며 시작도 끝도 없는 문장이며 주인공의 출생이나 족보나 배경에 관해 언급이 없습니다. . 두 번째 / 영원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출현을 부각시킴 **일곱 가지 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합니다. 1)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2장)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장) 3) 38년된 병자를 고치심 (5장) 4)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심 (6장) 5) 물위를 걸으심 (6장) 6) 소경을 고치심 (9장) 7)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11장) **구약에서 나타내신 [스스로 있는 자] 되심을 증거 합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3) 나는 양의 문이다. (10:9) 4)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 . 세 번째 내용상으로 공관복음에 나오는 중요한 내용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침례받으심/ 광야의 시험/ 변화되심/ 겟세마네의 기도/ 만찬의 제정등] 비유들이 공관복음에 비해 단순성이 없고 우화적입니다. 이적 사역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이 없는데 이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을 알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책이 왜 기록되었는지 봅시다. 요한은 왜 이글을 기록했으며 요한복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대한 질문이며 반드시 알아야 할 문제입니다. 20:31에 그 는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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