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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架上七言) 묵상 [THE SEVEN WORDS OF JESUS ON THE CROSS]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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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말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입니다. 둘째 말씀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이것은 낙원의 약속입니다. 셋째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이것은 아들로서의 효도입니다. 넷째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막 15:34; 시 22:1).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영적인 고민입니다. 다섯째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것은 육신적인 고통입니다. 여섯째 말씀 : “다 이루었다”(요19:30). 이것은 구원사역을 완성한 승리의 선언입니다. 일곱째 말씀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것은 아버지를 신뢰하는 최후의 신앙고백입니다. ● 고난주간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하며, 이 주간은 수난절의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임을 말합니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로부터 시작됩니다. ● 종려주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마21:1-11,막11:1-10, 눅19:28-40, 요12:12-19)이며, 고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주간에는 더욱 뜻 있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합니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이 됩니다. 한때 이 주일은 "호산나 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 주일이 종려주일과 관련되기 이전에 고대 교회에서는 "세례 지원자 주일" 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부활절에 세례를 받기 위하여 행하는 지원자들의 준비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례 지원자들은 이 주일에 처음으로 기독교 신조와 주님의 기도를 배웠고 그것을 비밀로서 간직하였습니다. 이날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며 또한 예수님의 고난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요 일 주 제 내 용 성경 본문 일요일 개선의 날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2. 무리의 반응과 예수님 우심 눅19:28-40 눅19:41-44 월요일 권위의 날 1.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2. 두 번째 성전을 깨끗이 하심 마21:18-19, 막11:12-14 마21:12-17, 눅19:45-48 화요일 변론의 날 1.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 2. 경고의 세 가지 비유 (두 아들, 악한농부, 혼인잔치) 3. 지도자들과 논쟁 4.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 5. 유다의 반역 마21:23-27, 눅20:1-8 마21:28-32, 마21:33-46, 마22:1-14 마22:41, 눅20:41-44 마24:25, 막13장, 눅21:5-38 마26:14-16, 막14:10-11 수요일 음모의 날 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 마26:3-5, 막14:1-2, 눅22:1-2 목요일 준비의 날 1. 유월절 식사 2. 최후의 성만찬 3. 예수님의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마26:17-25, 요13:1-7 마26:26-29, 막14:22-25 요17장, 요13:31-35 금요일 수난의 날 1.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님 2. 공회앞에 서신 예수님 3.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심 4. 십자가의 죽으심 마26:3036-56, 막14:2632-52 마26:57-58, 눅22:54-55 마27:21-31, 눅23:1-25 마27:31-50, 막15:20-46, 눅23:26-54 토요일 예비의 날 1. 로마병정 예수님의 무덤을 지킴 마27:62-66 ● 가상칠언이란? A.D. 33년 4월 초순 금요일 일기 화창한 어떤 봄날 예루살렘성 밖으로 세 사람의 십자가의 죽음 행렬이 엄숙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목적지는 히브리말로 골고다요, 아람어로 된 말을 해석하면 해골이란 동산인데 여기까지 와서 각자가 메고 온 십자가에 이 세 사람을 달았습니다. 그 중에 중앙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는 첫 번째 말씀을 통해, 자기를 공격하고 침 뱉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한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함께 했던 12제자, 순수하게 따랐던 믿음의 여인들이 더 생각났을 텐데, 예수님은 죄인들의 용서를 가장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는 두 번째 말씀은, 과거가 어떠하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할 때 완전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극형을 받을 정도의 강도였지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하며 긍휼을 구할 때, 주님의 사랑으로 안아주신 것입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라는 세 번째 말씀은, 슬픔이 봇물처럼 터져나가는 어머니 마리아를 향한 아들 예수의 자애로운 음성입니다. 아기를 잉태할 때에도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쳐 죽이는 규정 속에서 고통스러웠는데, 또 다시 십자가의 참혹함을 보며 마음이 찢어진 것입니다. 여섯 시간 동안 피 흘리며 죽어가는 아들 앞에서 어느 어머니가 제 정신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의 미래를 준비하며, 사랑이 가장 많은 제자 요한에게 맡기신 겁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는 네 번째 말씀은, 그동안 끊임없이 동행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순간만큼은 외면하셨음을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이 순간은 나의 모든 죄와 인류의 모든 죄가 심판받는 가혹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셨죠. 그래서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하셨지만, 그 버림의 사건이 있어야만 모든 인류의 구원이 가능함을 아시고 기꺼이 순종하며 받아들이신 겁니다. “내가 목마르다”(요 19:28)는 다섯 번째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진흙, 즉 진노의 육체를 입고 스스로 갇히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저 먼 곳에 있는 어마어마한 신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와 공감(共感)하기 위해 성육신(incarnation)하신 것이지요.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여섯 번째 말씀은, 인간적인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속죄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이룬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했고, 십자가 위에서 저주 받으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생명을 얻었음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는 마지막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의탁할 수 있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체면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 첫번 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입니다. 아더 핑크는 예수님의 용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고(눅 3:21) 기도로 마무리 하셨다"고 소개합니다.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이 아니라 적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인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누구를 대상으로 기도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 누구도 기도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더 핑크는 여기서 놀라운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중보기도는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삼천 명의 회심이 그 응답이다. ... 사도 베드로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언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고 말한 사도행전 3장 17절이 그 근거라고 말합니다. 삼천 명이 회심한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그 도화선이 베드로의 설교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두번 째 말씀은 죽어가는 강도의 부탁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 양 쪽엔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같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강도들이었습니다. 둘 다 죽음의 여섯 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둘 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죽어가면서 당장 죄사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죄를 안고 살았을 때 처럼 강퍅한 마음으로 완고하게 죽었고,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고 죽었습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쟁기질입니다. 겨울을 지나며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과 같은 우리의 마음에 신앙의 쟁기질로 생명이 움틀 땅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잊고 살았던 삶부터 회개하며 이번 사순절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죽음...The Crucifixion 1.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23:34 Luke) 죽는 순간까지 자기에게 침과 욕을 밷고 창과 못을 박는 원수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아가페 예수.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Praying for the enemies who spat, cursed, struck, nailed him; the Agape Jesus. 2.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누가 23:43 Luke). 마지막 한 영혼의 구원...메시야 예수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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