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창세기 50:12-13)
창세기는 죽음으로 끝납니다. 야곱이 죽고, 요셉도 죽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창세기 50:25-26)
긴장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아직 온전히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받은 족장들이 죽어 나갑니다. 게다가 지금은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에 머물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13/새번역)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어 정하신 때에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대한 약속을 “이미” 받았지만, “아직” 그것을 온전히 소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신자는 이러한 긴장과 갈등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또한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을 경험하며 삽니다. 성도는 이미 구원받아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몸을 입고 살아가는 지금은 온전한 천국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애굽에 살지만 약속의 땅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오늘을 사는 신자도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매몰되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고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In it, but not of it).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19-21)
형들은 야곱의 죽음 이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요셉에게 사죄합니다. 야곱도 용서를 부탁했다고 하며, 종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요셉은 웁니다. 형들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어 속상합니다. 그러나 화내지 않습니다. 요셉은 이미 용서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간곡한 말로 확신시켜 주고, 위로합니다. 우리는 형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떨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해할 때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합시다. 하지만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분께서 위로하십니다.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을 더하십니다. 진노하시지 않고, 차근차근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함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연약함을 느낄 때마다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역전의 명수이십니다. 그 역전의 절정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확신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