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라디아서 1:11-12)
바울의 “3중 부정”을 무엇을 위함일까요? 그는 자신을 부르시고, 변화시키시고, 복음 사역을 위탁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지금 사도는 “권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면서, 말씀하시는 분, 친히 위임하시는 분, 죄인을 변화시키시는 분,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본격적인 복음의 내용을 서술하기 전에, 먼저 권위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크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 해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파송하셨다는 의식이 없다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권위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복음을 맡기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강한 부정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압도되어 있습니다. 창세 전에 나를 택하시고, 정한 때에 예수님 앞에 나아오게 하시며,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 권위 앞에 머리를 숙이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라디아서 1:13,15)
바울은 잔혹하게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만나주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하여 주신 분이요, 은혜로 불러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격 없는 자를 택하시고, 갚을 수 없는 호의로 불러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공유합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 1:5)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이사야 49:1)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모두 이 고백을 자신의 것으로 삼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께 충성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선택과 작정을 인정합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은혜롭게 불러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하지만 엄중히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택하심은 반드시 소명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갈라디아서 1:16)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이를 위해 예수님은 바울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친구여! 구원받았습니까? ‘아멘’할 수 있다면 당신은 주님의 택함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소명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1장 6절의 고백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당신의 소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당신에겐 할 일이 있습니다.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