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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8월 25일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사망, 니체는 25년 간 바젤의 대학교수로 있었지만 ‘과대 망상적 조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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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프리드리히 니체, 그래도 다시 한 번(Aber noch einmal)”


오늘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사망한 날입니다. 1900년 8월 25일, 55세의 니체는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던 중 바이마르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천주교 신부를 비롯한 조문객들을 들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쓸데없는 위로를 거절한 니체는 죽는 순간까지 정직한 이교도로 남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염세적인 철학자였던 그 역시 보통 사람처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니체는 “그러나 그래도 다시 한 번(Aber noch einmal)”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독교는 대부분의 고대와 현대 철학에 맞서 이성은 실재의 위가 아닌 실재 그 자체나 사변적인 이성에 밀착한다는 니체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뿐이다. 철학자들이 사실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언제나 우선해야 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복음의 주장이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재설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놀이가 있는 니체의 애정은 기본적으로 불교적인 ‘동일한 것의 영원 회귀’에 대한 그의 긍정으로 전복된다. 각 순환 주기에는 나름의 힘이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반복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순례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실 ‘새 일’, 과거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게 한다.[Michael Horton, The Christian Faith, 이용중 역,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81.]

루터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시인이자 음악가, 철학가였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바울을 적그리스도와 간질병 환자로 취급했습니다. 바울이 기독교를 제도적으로 바꾸어버렸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니체는 네로와 나폴레옹 같은 이들을 우상화하며, “초인간”(Ubermensch)이 인류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을 나쁘게 평가한 니체의 사상은 선과 악에 대한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일으켰고,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무정부 상태를 심어주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보이는 만물의 영겁회귀(永劫回歸)를 역설하는 니체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재능 많은 니체는 왜 젊은 시절에 신앙을 버렸을까요?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많은 이 때, 이 문제를 놓고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권력에의 의지〉와 〈반시대적 고찰〉……이 책들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미 새로운 실존 철학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니체는 그러한 명성을 오랫동안 실감하지 못했다. 그는 1866년 어린 학생시절 때부터 성병인 매독에 감염되었고, 30년간 일반적으로 ‘뇌연화증’이라 불리는 ‘진행성 마비’에 시달렸다. 언어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니체는 25년 간 바젤의 대학교수로 있었지만 ‘과대 망상적 조병’을 보였다……결국 미쳐버린 그는 세계의 권력을 장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계획은 황제 빌헬름 2세를 폐위시키고, 모든 반유대인들을 추방하는 것이다. 니체는 편지의 끝에 ‘카이사르’, ‘디오니소스’, 또는 ‘십자가에 달린 이’로 서명을 했다.[Hans Halter, Life and Last Words of Famous Women and Men, 한윤진 역, 『유언: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서울: 말글빛냄, 2007), 2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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