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함께 신실한 친구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나 당신 자신의 영혼을 향해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신실하게 행하고 싶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심각하게 훈계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 훈계를 거절하거나, 훈계를 통해 교정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피해야 합니다(살후3:14). 소크라테스를 박해한 사람들과 같은 욕탕에서 씻지 않으려 한 아테네인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 시대의 유명한 이단이었던 케린투스가 욕탕으로 들어오자, 즉시 그곳을 떠나 케린투스와는 같은 장소에도 있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도 마르시온이 인사하며 자기를 아느냐고 묻자 “그래 알지. 마귀의 큰아들 아닌가.”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사기꾼에 대해 폴리캅이 취한 태도는 이처럼 단호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한 것과 선견자로 하여금 대단히 슬픈 충언을 하게 만든 것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아실 것입니다(대하19:2). 아하시야와의 교제 역시 여호사밧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사귐에 도대체 어떤 위험이 있었던 것일까요? 여호사밧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훌륭한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호사밧이 아합을 친구로 택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합의 행위와 우상 숭배를 따라 하기 쉽게 됩니다. 결국, 여호사밧과 아합의 우정은 사람들에게 올무가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귀는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우리가 누군가를 친구로 택할 때는 친구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악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의 악함을 옳다 인정하여 그 악행에 동참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데이빗 클락슨(David Clarkson 1622-1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