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함께 영광에 사로잡혀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 123:1) 이 구절은 기도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마음을 이 땅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피조물에게서 멀리하고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하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영광스러운 성도들과 천사들 사이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처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가운데 영혼을 천국에 이르게 하는 일에는 갑절의 유익이 있습니다. 기도는 혼란과 의심과 다른 쓸모없는 생각에서 멀리하는 수단이 됩니다.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는 마치 죽은 자요 관계없는 자인 것처럼 우리 마음을 세상에서 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은 얼마나 쉽게 이 땅의 염려들에 휩쓸려 가는지요! 영혼을 구분하고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 기도가 얼마나 많은 우스꽝스러운 생각들로 뒤섞이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 마치 친구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다가 꽃보다도 냄새 나는 잡초를 더 많이 집어넣는 사람처럼, 서툴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육신이 끼어들고, 우리의 육적인 마음은 기도를 헛된 생각들과 이 땅의 혼란스러운 일들로 뒤섞습니다. 하나님께 분향하려고 향로를 들고 나오면서 향에 유황을 섞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세상을 넘어 하나님께 올라가게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 속에 완전히 사로잡히게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땅 위에 있지만 우리 영혼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가 이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란이 일어납니다. 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땅 위에 있는 일들- 비록 그 일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보여 준다 할지라도-에 주목할 때 낙심케 되고, 바깥에서 오는 위협과 우리 안에서 생기는 곤란을 만나게 됩니다. 이 낮은 땅의 안개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청명한 위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개울물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샘에는 많은 것이 있으며, 이 땅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토마스 맨턴(Thomas Manton, 162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