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10)
사도는 권면을 이어가다가 다시 복음을 선언합니다. 복음은 서술하고 우상은 명령합니다. 복음도 명령하지만 먼저 듣게 합니다. 이로 인해 반응이 나옵니다. 명령도 나오지만 다시 서술로 돌아갑니다. 복음은 설득하고 기다립니다. 논증하고 설복시킵니다.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여주고,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를 통해 주시는 복음에 귀 기울입시다.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2:8)
첫째, 듣는 것과 믿는 것, 그리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만큼 이를 잘 설명해 주는 구절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순종과 듣는 것이 같은 무게임을 알려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주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자신의 지혜와 판단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갈등을 겪지 않습니까?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명석함보다 지혜롭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책망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청종(聽從)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요,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마음 다해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복음을 들으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들음은 귀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둘째, 구약성경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답고 웅장하게 신자의 정체성을 선포하는 본문은 출애굽기 19장 5-6절의 메아리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베드로는 자신의 편지를 받는 이들이 참되고도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임을 알려줍니다. 본문의 10절 역시 호세아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와 그의 음란한 아내 고멜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을 바꾸셔서, 주님은 은혜 언약의 성취를 말씀하십니다. 집 나간 아내를 추적하고, 값을 지불하여 다시 데려오는 호세아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듣습니다. 호세아와 같은 이름으로 불린 하나님의 아들의 피값으로 우리가 용서받고, 용납과 사랑을 받게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 택함의 목적입니다. 본문 4절은 예수님을 “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로 부릅니다. 본문 9절은 그리스도인을 “택하신 족속”이라 합니다. 택함 받으신 예수님은 하실 일이 있었습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택함받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덕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배부른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즐거이 전합시다.